프로야구선수협, ‘최동원 정신을 살리고, 박석민을 본받아라’
하릴없이 한해가 또 저물고 있다. 신종 역병 ‘코로나 바이러스’의 긴 터널의 출구가 여전히 안 보인다. 너나 할 것 없이 괴로운 시대다. 이런 와중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1988년 9월 13일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모태(母胎)인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가 설립총회를 연 날이다. 최동원이 앞장선 선수협 조직 결성 시도는 구단들의 ‘직장 폐쇄’와 ‘참가 선수 재계약 불가’ 등 온갖 압박과 회유로 결국 좌초됐다. 그때가 선수들의 결사 단체 조직 시도의 1차 파동이었다.
벌써 30년 세월이 흘렀다. 당시 선수협 총회의 유인물을 살펴보니 이제는 고인이 된 최동원 회장(롯데 자이언츠)을 비롯해 이광은 부회장(MBC 청룡), 계형철(0B 베어스), 서정환(해태 타이거즈) 감사를 포함 구단별 이사와 대의원 명단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당대 최고 선수들이었던 김성한, 선동렬, 이순철, 장채근(이상 해태), 삼성 라이온즈의 장효조와 이만수, 태평양 돌핀스의 김일권, 양상문, OB의 박종훈, 김경문, 빙그레 이글스의 유승안, 이상군, MBC의 신언호, 김용수, 롯데의 김용철 윤학길 등이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일일이 옛일을 들추기는 뭣하지만, 오늘날 선수협이 버젓이 행세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런 숱한 고난과 곡절의 과정을 거쳐서 가능했다.
[사진] 1988년 10월 8일치 선수협 관련 한겨례신문 기사 일부.
새삼 옛일을 끄집어내는 것은 최근 들통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몰상식한 작태가 너무도 한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동안 선수협의 운영이 정도와 상식을 벗어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단 이대호 전 회장의 판공비 수령 행태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비일비재했던 사무총장의 불투명한 예산집행 행태도 닮은 꼴이다.
급기야 한 시민단체로부터 형사고발까지 당한 형편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 한마디로 뭉뚱그리자면, 예전의 악습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일부 사무총장들의 농간을 묵시적, 암묵적으로 방조했던 선수협 집행부(구단별 선수 이사들)의 행태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아직도 기본적인 운영조차 ‘그들만의 리그’처럼 제멋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항간에 수십억 원 거액 연봉자들의 ‘눈먼 돈 잔치’라는 의혹의 화살을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올해는 프로야구가 ‘코비드19’ 사태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고, 리그도 파행 운영됐다. 비록 시즌은 가까스로 마치기는 했으나 무관중 경기가 장기간 이어졌고, 구단들은 많게는 250억 원에 육박하는 재정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이런 마당에 선수협은 사회적인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고사하고 뒷전에서 제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됐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물론 자선단체는 아니다. 엄연한 이익집단이기는 하지만 온 나라의 재난을 외면하는 것은 ‘혜택받은 자들’의 행태로선 마뜩찮다. 선수협의 간부 누구 하나 앞장서서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하다못해 작은 온정의 손길이라도 베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메이저리그의 추신수 같은 자선 행태가 돋보였던 터였다. 희귀한 사례지만 코로나 기부 행렬에 그나마 박석민(NC 다이노스)과 우규민(삼성 라이온즈) 등이 동참한 것은 작은 위안이었다.
더군다나 박석민은 강원도 산불 때나 다른 이웃들의 재난을 살피고 액수를 떠나 기부를 아끼지 않고 있다. 박석민은 2016년부터 지금까지 후배들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총액 8억여 원을 기부, KBO가 올 시즌 뒤에 ‘사랑의 골든글러브’ 주인공으로 뽑기도 했다.
선수협이 각성해야 할 일은 많으나 특히 좀체 근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외면, 묵인 방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 어떤 조직보다 선수협은 소속 선수들의 반사회적인 행태에 부끄러움을 갖고 자체 교육을 한다든지 해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선수협은 조직 구조상 각 구단의 대표들로 구성된 집행부가 시즌 중에는 일일이 신경을 쓰기 힘들다. 따라서 사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이 반듯하고 투명하게 행정 실무를 책임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여태껏 알음알음으로 인선했던 행위는 이제 없애야 마땅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새로 회장으로 선출된 양의지(NC)가 사무총장을 공개모집 하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선수협은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최동원 정신’을 되살리고, 박석민의 자세를 본받을 줄 알아야 한다.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부디 받은 만큼 베풀 줄도 아는 조직이 되기를 바란다. 신임 양의지 회장이 굳은 ‘의지’로 선수협을 탈바꿈시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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