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사준 3만원 큐, 캄보디아 댁 당구 인생 열었다
결혼 10년차, 피아비·김만식 부부
남편이 입문 권유, 고된 훈련 독촉
올해 국내 3관왕·세계선수권 3위
고국의 가난한 아이들 도와 뿌듯
“요즘 제 성적이 좋아서 그런지, (남편이) 더 잘생겨지지 않았나요?”(스롱 피아비)
“주위에서 늙어 보인다길래 머리 염색도 했어요.”(피아비 남편 김만식씨)
‘당구 캄보디아 댁’ 스롱 피아비(30)와 남편 김만식(58)씨를 21일 만났다. 경기 수원시 빌킹아트홀에서 열린 ‘다문화 당구 아카데미’에서다. 한 캄보디아 출신 참가자는 “피아비는 캄보디아에서 TV에 나오는 유명인사”라고 소개했다.
올해 피아비는 3쿠션 아시아 여자선수권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세계여자선수권에서는 3위에 올랐다. 국내 대회 3관왕이다. 현재 한국 1위, 세계 2위다. 한국과 캄보디아에서 후원 제안이 쏟아진다.
피아비는 불과 9년 전까지 캄보디아에서 아버지와 감자 농사를 지었다. 충북 청주시에서 작은 인쇄소를 운영하는 김씨와 2010년 결혼했다.
김씨는 “인터넷 국제결혼센터를 통해 만났다. 손에 풀물이 새까맣게 들어있었는데, 꾸밈없이 순수해 보였다”고, 피아비는 “캄보디아에서는 하얀 걸 좋아한다. (남편은) 왕처럼 피부가 하얗고 점잖았다”고 서로 첫인상을 떠올렸다. 한국 생활 10년 차 피아비. 아직 좀 서툴어도 한국말을 꽤 한다.
자신이 출근하면 아내가 외로울까 봐 김만식씨는 인쇄소 한쪽에 살림방을 차렸다. 2011년 12월 피아비는 남편을 따라 찾았던 당구장에서 처음 큐를 잡았다. 피아비는 “그날 남편이 사준 3만 원짜리 큐가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김씨는 “심심해 보여 연습구를 줬는데, 팔이 길어서인지 곧잘 쳤다”며 “인쇄소에서 박스에 구멍을 뚫고, 큐가 반듯하게 나가는 연습만 3개월간 하더라”라고 전했다.
피아비는 인터넷으로 가난한 캄보디아 아이들을 보며 매일 울었다고 한다. 김씨는 “나도 1960년대 중반 보리밥도 못 먹던 시절이 있었다”며 “당신이 당구만 잘 치면 저들을 도울 수 있다. 힘 닿는 데까지 밀어주겠다”고 용기를 북돋웠다. 김씨는 당구 연습을 하다 자정 가까워 귀가한 아내에게 안마를 해줬고, 식사 등 살림도 도맡아 했다.
김씨는 아내가 힘든 내색을 하면 “포켓볼 선수 자넷 리는 척추에 철심을 박고 훈련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참아야 한다”며 훈련을 독촉했다.
피아비는 “잔소리가 많아 정말 미웠다. 무서운 선생님이었다”면서도 “남편이 아니었다면 평범하게 애를 낳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아비는 2012년 아마추어동호인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당구계를 평정했다. 잔소리꾼 남편은 2년 전부터는 경기장에도 따라다니지 않는다.
결혼 10년 차. 여전히 부부금실이 좋다. 피아비는 “처음에 ‘여보’라고 불렀는데, 요즘엔 귀여운 느낌을 섞어 ‘아저씨’라 부른다”며 웃었다. 김씨가 “제가 150을 치는데, 처음에는 제가 이겼다”고 주장하자, 피아비는 “지금 치면 아저씨는 빵점 나올 걸요”라고 맞받았다.
피아비는 올해 1월 캄보디아를 찾아 가난한 아이들에게 한국산 구충제 1만개를 나눠줬다. 3월에는 캄퐁톰에 학교 부지(3000평)를 매입했다. 캄보디아 공무원들이 비협조적이라 학교 설립작업이 더디자, 요즘은 ‘차라리 농장을 세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까’ 고민 중이다.
피아비는 “원래 꿈은 의사였는데 (가난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농사일을 했다. 캄보디아는 가난 탓에 꿈이 있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며 “집에 캄보디아 아이들 사진과 함께 한글로 ‘나는 이들을 위해 살 것이다’라는 문구를 붙여놓았다”고 했다.
김씨는 “평생 일만 하며 살았는데, 캄보디아를 찾아가 사람들을 도우니 그렇게 마음이 좋더라. 내가 이 사람을 도운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날 도왔다”며 “내가 독하게 가르칠 때 피아비가 큐를 놓았다면, 난 외국에서 마누라를 데려다가 공갈친 나쁜 놈이 됐을 거다. 이 사람이 끝까지 참아 오늘이 있다”고 말했다.
피아비는 “한국에 시집올 때 할아버지가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만난다’고 응원해줬다. 좋은 사람을 만난 거 보니 내가 착하게 살았나 보다”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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