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겨내지 않을까.”

장정석(46) 키움 감독은 정규시즌에 묘수를 꺼내들었다.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는 최원태, 안우진, 이승호 등에 10일짜리 강제 휴가를 부여한 것이다. 투수 파트 운용을 전적으로 도맡는 브랜든 나이트(44) 투수코치의 제안을 장 감독은 적극 수용했다. 보통 어린 투수일수록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이유로 실전을 최대한 많이 소화하도록 하는데 키움은 흐름과 역행했다. 선발투수들이 모두 휴식을 취하고 난 뒤엔 불펜계투조에게도 임시휴업을 권장했다.

그저 한 턴을 쉬어간 것이 가을에 빛을 발하고 있다.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투수만 14명을 포함했다. 마운드의 힘을 극으로 끌어올렸다. 더 중요한 건 변칙운용인데 투수마다 소화하는 이닝이 제각각이다. 선발이 5~6이닝을 버티고 필승계투조가 1이닝씩 소화하는 공식은 없다. 선발 투수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나이트 코치는 교체를 지시한다. 불펜계투조도 1이닝을 소화하기보다 아웃카운트 한 두 개만 적립하고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조상우-김상수-오주원으로 이어지는 필승조도 순서대로가 아닌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변한다.

나이트 코치는 그때의 선택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외부에선 무모한 선택이라고 했어도 뚝심 있게 지지한 덕이라고도 자부한다. “정규시즌부터 감독과 여러 가능성을 놓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트레이닝 파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약속했는데 트레이너들이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면 바로 쉬게 했다”고 운을 뗀 나이트 코치는 “실전으로만 지켜보고 선수의 몸 상태를 체크하는 건 예전 방식이다.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건 트레이닝 파트만의 몫이다. 그래서 투수들의 컨디션에 관한 보고를 받고 바로 쉬게 했었다”고 털어놨다.

휴식의 효과는 비단 컨디션 유지만이 아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사이에 굳건한 믿음도 구축했다. 짧고 굵게 던져 임팩트를 남기는 것도 좋지만 프로선수로서 롱런할 수 있단 생각을 가진 선수단이 코칭스태프에 마음을 여는 계기였다. 나이트 코치는 “지난해 김상수-오주원-이보근-한현희 등 핵심 선수들만 투입하다 보니 가을야구에서 힘이 빠져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았다. 우리는 분명 언더독이기 때문에 준비 과정부터 치밀해야 했다”며 “지금 우리 팀의 특장점은 ‘뎁스’다. 필승조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나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두가 안다. 모두가 필승조인 셈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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