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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 동생도, 패한 언니도 같이 울었다' 명승부 만큼 아름다웠던 당구 우정

보헤미안 0 550 0 0

“존경한다고 하면 언니는 오글거려하지만 정말 옛날부터 존경했어요. 당구장 알바할 때부터 언니가 선망의 대상이었어요”(우승자 김세연)

“너무너무 이 친구의 우승을 바랐아요. 비록 결승전에서 졌지만 너무 기분이 좋아요”(준우승자 임정숙)

피말리는 결승전이 끝나고 첫 우승을 차지한 동생과 아쉽게 패한 언니는 서로 뜨겁게 끌어안았다. 두 선수의 눈에는 모두 눈물이 흘렀다. 치열했던 명승부만큼이나 아름다운 우정이었다.
 

프로당구 ‘TS샴푸 LPBA 챔피언십 2020’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첫 우승을 차지한 김세연. 사진=PBA
프로당구 ‘TS샴푸 LPBA 챔피언십 2020’ 결승전에서 우승한 김세연과 준우승한 임정숙이 경기 후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있다. 사진=PBA

지난 3일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호텔에서 열린 프로당구 ‘TS샴푸 LPBA(여자부) 챔피언십 2020’ 결승전. 마지막 5세트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선수는 ‘무서운 신예’ 김세연(25)이었다.

김세연은 LPBA 토너먼트에서 통산 세 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3쿠션 여왕’ 임정숙(34)에게 먼저 1, 2세트를 내리 3, 4, 5세트를 따내는 대역전드라마를 펼쳐 세트스코어 3-2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해 변변한 우승 경험이 없었던 김세연이 생애 처음 큰 대회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6월 LPBA 개막전 대회(파나소닉 오픈) 결승에서 아깝게 패해 준우승에 그친 아쉬움도 씻었다.

이번 대회에서 김세연의 돌풍은 매서웠다. 일대일 토너먼트로 치러지는 16강전부터 4강전까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2-0으로 이겼다.

경기 시간도 짧았다. 16강전은 33분, 8강전은 26분, 4강전은 3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8강전에서 걸린 26분은 LPBA 출범 후 최단 시간 승리 기록이었다. 워낙 빠른 타이밍에 거침없이 공을 치다보니 ‘속사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결승전은 운명의 장난이었다. 자신의 우상이자 가장 친한 언니인 임정숙과 맞붙었다. 김세연과 임정숙은 이번 대회 기간 4박 5일 동안 함께 생활할 정도로 남다른 사이다.

김세연이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당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임정숙의 영향이 컸다. 임정숙도 항상 성실하게 노력하는 김세연을 예뻐했다. 때로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으면서 김세연의 성장을 도왔다.

결승전에 함께 올라간 뒤 둘은 전날 밤 “재미있게 후회 없이 그냥 즐기자”며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절친이 만났지만 양보는 없었다. 승부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LPBA 최다 우승(3회) 경력을 자랑하는 임정숙은 1, 2세트를 손쉽게 따내면서 관록의 힘을 보여줬다. 중요한 순간마다 2점짜리 뱅크샷(당구대 벽을 먼저 맞힌 다음 스리쿠션에 성공하는 것)을 성공시켜 한꺼번에 점수를 쓸어담았다.

하지만 ‘속사포’의 저력은 3세트부터 발휘됐다. 벼랑 끝에 몰리니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그냥 한 세트만 따자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쳤다. 공이 잘 들어가기 시작했다. 3세트를 7이닝 만에 11-0 퍼펙트로 따낸 데 이어 4세트를 21이닝까지 가는 난전 끝에 11-9로 이겨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결국 승리의 여신은 김세연의 손을 들어줬다. 김세연은 4-6으로 뒤진 7이닝에서 연속 뱅크샷으로 4점을 뽑아 단숨에 경기를 뒤집었다. 이어 8이닝에서 마지막 득점을 올려 최종 우승을 확정했다.

김세연은 인터뷰 중에도 계속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는 “엄마! 나 우승했다”고 크게 소리친 뒤 “임정숙 선수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다. 언니 사랑해”라고 말했다.

임정숙은 결승전이 끝난 뒤 자신이 우승한 것보다 더 기뻐했다. 그는 “나도 우승하고 싶었지만 이 친구가 우승해서 더 기분 좋다”며 “앞으로 모든 선수에게 존경받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격려했다.
 

프로당구 ‘TS샴푸 LPBA 챔피언십 2020’에서 준우승한 임정숙(왼쪽)이 우승한 절친 동생 김세연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진=P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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