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마침내 '왕'이 된 남자, DB 김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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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 인사이드] 마침내 '왕'이 된 남자, DB 김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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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농'자도 몰랐다.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농구를 시작했다.

남다른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무대까지 평정했다. 프로에서 조금의 부침은 있었지만,  '국내 최고 빅맨'이자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꾸준히 유지했다. 결국 그에게 기회가 왔고, 그는 보란듯이 역대 최고 연봉(12억7천9백만원)을 경신하며 프로농구 스타 반열에 올랐다. 올 시즌을 앞두고 창원 LG에서 원주 DB로 적을 옮긴 김종규의 이야기다.

비시즌동안FA 협상에 몰두했던 그는 기분 좋은 결과와 함께 진천선수촌에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훈련 중이다. 오는8월31일 열리는 농구월드컵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진천선수촌을 찾았다. 

※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8월호 웹진에 게재된 글입니다. (7월에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국가대표' 김종규 만나서 반갑습니다. 월드컵 대비 훈련이 한창일 것 같은데,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우선 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훈련하고 있어요. 중요한 대회고, 우리가 목표로 둔 게 있기 때문에 그걸 이루기 위해 선수들이 다 같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슈팅을 가장 많이 신경 쓰고 있어요. 그 다음이 조직력, 체력이고요.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근데 한 번에 욕심내서 하면 탈이 나거나, 부상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 한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감독님께서 3점슛을 많이 강조하신다고 들었어요. 
슛을 던지면 10 중에 3은 3점슛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DB에서도 이상범 감독님께 서 3점슛을 연습해 오라고 이야기하셨고요. 저도 슛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 에 자신은 있어요. 안 던져 버릇해서 못 던지는 거지, 연습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김상식 감독님께서 (슛 던지는) 요령을 많이 알려주세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던 지고 있는데, 생각보다 감이 좋아요. 어릴 땐 3점슛도 많이 던졌기 때문에, 이번 시즌에는 도전을 해보려고요. 

어릴 때부터 대표팀을 많이 겪었잖아요? 이번 대표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매번 대표팀 분위기는 좋았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감독님께서 좀 더 분위기에 신경 을 쓰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아까 연습할 때도 보셨겠지만, 감독님께서 많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지금 분위기는 정말 좋아요. 감독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는 만큼 선수들도 할 땐 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요.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이 김종규 선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모든 운동선수의 꿈이잖아요.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지해야 하고,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제 몸 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하고 싶어요. 솔직히 힘들기도 해요.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정말 꿈이었거든요. 꿈을 이뤘고, 지키기 위해 대표팀에서도 열심히 해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해요. 물론 어느 시점이 지나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줘야겠죠.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뛰고 싶어요. 대표팀은 저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져 다준 곳이거든요.

"농구 해보지 않을래?"… "네!" 


이제 시계를 돌려 김종규 선수의 삶을 쭉 훑어보려고 해요. 처음에 농구공을 어떻게 잡게 됐는지부터 떠올려 볼까요? 
오래된 일이네요(웃음). 저는 농구부가 없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어떤 스카우트분께서 다른 선수를 보러 우리 학교에 오신 거죠. 근데 그 선 수보다 제가 더 눈에 띈 거예요. '농구 해볼 생각 없냐'고 하시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해보겠다'고 했죠. 키가 크다는 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요(웃음). 농구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냥 무작정 쫓아다녔어요. 유니폼도 없이 했어요. 4학년 때 농구부를 들어갔는데, 5학년 때 처음으로 유니폼을 받았죠. 그때부터 레이업 슛을 하 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땐 농구를 배웠다기보다, 그냥 형들을 따라다닌 것뿐이었 죠. 연습경기 하면 벤치에 앉아서 졸고 그랬어요(웃음). 또래보다 키만 컸을 뿐이지, 농구에 재능이나 흥미가 있던 건 아니었죠. 

그랬던 유년 시절 김종규가 농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때 1년을 정식으로 배운 뒤, 중학교 1학년 때 운동을 그만뒀어요. 너무 힘 들었거든요. 2학년 때까지 1년 정도를 쉬었죠. 근데 그때 키가 확 큰 거예요. 고등학교 코치님과 체육부장님이 집까지 오셔서 '얘는 무조건 운동을 시켜야 한다'고 설득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중학교에선 운동하기 싫다'고 했죠. '고등학교에서 운동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1년 동안 수업은 중학교에서 받고, 운동은 고등학교로 가서 했죠. 그때부터 정말 제대로 농구를 배웠던 것 같아요. 몸도 변하고, 신체 조건도 좋아 졌어요. 농구가 재밌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 버거웠던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가니까 쉬워지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 1년 쉬었던 게 도움이 됐던 것 같기도 해요. 



대학 무대를 호령한 남자 

그렇게 낙생고를 졸업한 뒤, 경희대에 입학해 김민구와 두경민이라는 최고의 팀 메이트를 만나 우승으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대학 시절을 돌아본다면 어떤가요. 
재밌었어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저한테는 소중한 추억이었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운동도 운동이지만 외적으로도 재밌는 일이 많았어요. 물론 힘든 일, 짜증 나는 일도 많았죠. 하지만 재밌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목표했던 것들도 이뤘고요.

여기서 한 가지 솔직한 답변을 듣고 싶어요. 경희대에서의 우승은 누구의 공이 가장 컸나요? 
제가 잘해서죠(단호). 그 친구들이 그런 식으로 농구 할 수 있게끔 제가 밑에서 보이 지 않게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날개를 달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심지어 그 친구들 만나서도 대놓고 이야기해요. '너희가 그렇게 된 건 다 내 덕분'이라고(웃음). 

역시 '연봉킹'다운 발언이네요(웃음). 경희대 우승의 일등 공신인 김종규 선수가 대학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정신력이죠. 농구에 대한 열정과 정신력, '농구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간절함을 많이 배웠어요. 다만, 아무래도 대학에서 성적이 좋다 보니 '이 정도로만 해도 이기는구나' 하는 생각에 자기 발전에 소홀했던 것 같아요.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부분에서 생각 을 많이 해보고, 비록 지금처럼 좋은 시스템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프로 조기 진출 등의 도전을 한 번 쯤은 해봤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사실 현재 여론은 조기 진출이 대세예요. 대학리그에서 이미 최고 수준의 선수라면 1년이라도 일찍 나와서 프로를 경험하는 게 낫다는 의견인데, 대 학 4년을 모두 소화한 입장에서 김종규 선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자신 있고, 능력이 된다면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분명히 있어요. '대학에서 배울 게 없다'고 많은 분이 말씀하시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뭐가 됐든 간에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농구든, 농구 외적인 부분이든.



"KBL을 한 번 뒤집어 보겠습니다" 대학 무대를 호령한 뒤, 2013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돼 'KBL을 뒤집겠다'는 포부로 데뷔했어요. 

당시의 당당함은 역시 대학 시절 자신감에서 온 것이겠죠? 
사실 이제야 말할 수 있는 거지만, 당시 KBL에서 멘트를 준 거예요. 저는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멘트를 한 거고요. 그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고, 다시 돌아간다면 전 그 멘트를 안 할 거예요(웃음). 
1순위였지만, 프로 생활 시작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어요. 대학과 프로의 차이를 가장 크게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몸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가장 많이 느꼈어요. 대학 때까지만 해도 운동 능력이 좋으니까 높이 뛰고, 빨리 뛰면 됐던 것들이 프로에 오니까 안되더라고요. 안되니까 '다른 부분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시간이 오래 걸렸죠.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느껴요. 부상 등 우여곡절도 많았잖아요. 

어릴 때부터 리그와 대표팀을 오가며 많은 경기를 소화했던 게 이유였을까요? 
대표팀이라고 콕 짚어 얘기하긴 그렇고, 어렸을 때부터 차근차근 몸을 만들어 나갔어야 했는데 급하게 모든 걸 하려다 보니까 탈이 났던 것 같아요. 다치지 않는 게 진 짜 중요하더라고요. 부상을 겪어 보니 '건강한 몸'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됐어요. 지금도 몸 관리와 부상 방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요. 

그런데도 데뷔 후 지금까지 꾸준히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어요. 특히 올 시즌에는 강점인 포스트 플레이뿐만 아니라, 미드레인지 점퍼 등 원거리 공격 기술도 갖추면서 완성형 빅맨이 된 느낌인데요. 
더 해야죠. 더 공격적으로 하고, 평균 득점과 리바운드도 올려야 해요. 많이는 아니 더라도, 다만 몇 점, 몇 개라도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제 신체 조건을 생각했을 때 많 이 부족한 성적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DB' 김종규 프로 첫 이적과 함께 '연봉킹'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됐습니다. 
제가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뤘죠. 이제는 팀 우승과 시즌 MVP가 마지막 남은 제 꿈 인 것 같아요. 농구적인 부분에서. 

DB로 옮기면서 어린 시절부터 롤 모델이었던 김주성 코치와 드디어 한 팀이 됐어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김)주성이 형은 어릴 때부터 형보다는 코치님의 이미지가 강하신 분이에요. 오히려 지금이 어색하지 않은 것 같아요. 차라리 이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워낙 어린 시절부터 존경했던 선수고, 그런 분께 코치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더 없는 영광이에요. 

정든 창원을 떠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특히 팬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독 많이 한 것 같은데. 
정말 감사했어요. 5년 동안 창원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 덕분에 많은 것들을 버틸 수 있었고요. 좋게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게 아니어서 더 죄 송했죠. 창원에 가서 한 분, 한 분 인사 드리고 싶지만, 그러기는 힘드니까 인터뷰 같은 기회가 왔을 때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팬분들께 잘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대학 시절 숱하게 경험했던 우승이 프로에 와서는 조금 멀어진 느낌이에요. 

이제는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클 것 같아요. 그리고 좋은 기억이 있는 경희대 3인방이 한 팀 에서 뭉치게 됐고요. 
(김)민구는 워낙 친한 선수고, (두)경민이도 상무에서 돌아오잖아요. 대학 때 기억을 가지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또, DB에는 (윤)호영이 형, (김)태술이 형, (허)웅이 등 좋은 선수들이 많잖아요. 감독님과 다 같이 잘하면 큰일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요. 우선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슴 속에 자그마한 기대를 품고 우승을 향해 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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