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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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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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과 베트남축구협회의 계약은 다음해 1월 종료된다. 계약서에 따르면 10월부터는 연장 협의를 하게 돼 있다. 박 감독은 지난 2년간 믿기 어려운 수준의 성과를 올렸다. 지난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 4강 진출하며 역사를 썼다. 베트남의 오랜 숙원이었던 스즈키컵 우승을 통해 동남아시아 최강자로 군림했다. 올해 1월에는 아시안컵 8강이라는 ‘탈동남아시아’ 수준의 성적을 올렸다. 실패 없이 2년을 달려온 끝에 박 감독은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 베트남 쪽에서 강하게 재계약을 요구해야 정상인 그림인데 지난 7월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소문이 나왔다. 베트남 언론 보도를 통해 박 감독이 120만 달러(약 14억원)의 연봉을 요구했다는 정체 모를 루머가 터졌다. 협회 핵심 관계자는 다음 아시안컵 결승에 가야 한다며 은근슬쩍 성적 압박을 주기도 했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현 상황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심경을 밝혔다. 그는 “저는 단 한 번도 돈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보도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라면서 “솔직히 서운한 것도 사실”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선의 갖고 조기 협상하려 했는데…”
지난 7월 박 감독은 원래 10월로 예정된 재계약 협상을 미리 하겠다고 자처했다. 9월부터는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이 시작되고, 11월엔 베트남의 또 다른 목표인 동남아시아게임(시게임)이 열리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계약을 마무리하고 본업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절묘한 타이밍에 베트남 언론에서 박 감독이 고액의 연봉을 원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저는 베트남에 고마운 마음도 있고, 계속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선의를 갖고 조기 협상을 하려 했는데 그때부터 알 수 없는 이야기가 터지기 시작했다”라면서 “저는 결코 돈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당연히 많이 받으면 좋다. 하지만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은 시점에 제가 연봉을 얼마 요구했다고 구체적인 금액까지 나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왜, 어디서 그런 보도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협회 수뇌부가 다음 아시안컵에서 결승에 진출해야 한다는 말을 흘리며 박 감독에게 부담을 주기도 했다. 베트남 측의 언론 플레이가 의심되는 대목인데 최근 협회는 본지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며 현지 언론, 대중 사이에서 비난 여론이 일자 뒤늦게 사실이 아니라며 꼬리를 내렸다.
선의로 시작된 재계약 논의는 꼬일 대로 꼬여버렸고, 박 감독의 요청으로 협상은 중단된 상태다. 박 감독은 “솔직히 말하면 당시 일로 인해 서운한 마음이 생겼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10월이 되면 협상을 할 텐데 원만하게 처리되길 바란다. 저는 다른 것보다 베트남과 제가 추구하는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서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 건설적인 대화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며 큰 무리 없이 계약 연장이 이뤄지기를 기대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하지만 할 일은 해야”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박 감독이 박수 칠 때 떠나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단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달려온 박 감독의 명예가 혹시라도 실추될까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박 감독 생각은 다르다. 그는 “그런 말도 이해가 된다. 저를 아껴주시는 마음 때문인 것을 안다”라면서 “하지만 제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모든 대회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승한 스즈키컵이 유일한 성공이라고 본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만두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본다”라며 힘이 닿는 대로 베트남 축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만약 예상대로 3년 재계약이 성사되면 박 감독은 베트남 역대 최장수 사령탑이 될 수 있다. 베트남 축구사에서 3년 이상 이끈 감독은 없다.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자리다. 박 감독은 “감독들의 무덤에서 오래 버틴다면 그것 또한 나름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고 싶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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