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 죽빵, 겐세이…'일제 잔재 난무' 당구의 우리말 전도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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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국경은 없지만 선수에 조국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국내에서 프로 당구가 출범했는데 용어부터 제대로 쓰는 게 진정한 애국이다.”
‘우라, 죽빵, 겐세이, 하꼬마시, 우라마시….’ 당구를 즐기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당구장에서 듣고 쓰는 말이다. 일제 잔재 용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질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당구에서만큼은 표준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 인터넷 방송에서도 버젓이 통용된다. 지상파나 당구전문채널 등 TV 중계방송에서 뒤돌리기, 바깥돌리기 등 최대한 순수 우리말을 사용하려고 하나 명확한 용어 규정이 없어 각기 다르게 사용하는 게 현실이다. 1000만 동호인과 2만여 개 당구장을 가진 전 세계 최고 인프라는 물론, 3쿠션과 포켓 등 전 세계 무대에서 최상위 선수를 대거 배출하며 ‘제2 르네상스’를 맞이한 한국 당구이나 정작 용어 사용에서 ‘우리의 것’은 거의 없다.
이런 현실에서 프로당구 PBA에서 활동하는 홍문기(46)는 오래전부터 일제 잔재 용어 순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정화 활동에 앞장섰다. 국내 최대 규모 동호인 클럽을 운영한 그는 16년 전인 2003년부터 외래어와 비속어 금지 캠페인을 주도하며 우리말 보급 활동을 했다. 블로그나 자신이 운영 중인 당구클럽 홈페이지 등에 직접 연구, 분석을 통해 정립한 순수 당구 우리말을 게재했다. 볼 컨트롤, 테이블, 큐, 포지션별, 당구 일상 용어 등으로 구분했다. 특히 현재 사용 용어와 원일본어, 순화용어, 영어식 용어로 구분해 순수 우리말을 끄집어내기까지 과정을 명확히했다. 예를 들어 ‘다마’는 일본어로 ‘타마’이고 영어로는 ‘볼’이다. 자연스럽게 순수 우리말로 ‘공’이 된다. ‘우라마시’는 ‘우라마와시’라는 일본어에서 비롯됐는데 영어로는 ‘인사이드 롱앵글’로 불린다. 순화용어로 ‘길게 바깥 돌리기’로 표현할 수 있다. 그가 블로그에 올려둔 건 100개가 채 되지 않지만 실제 정립해둔 건 수백 개에 이른다. 동호인 사이에서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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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모두 꺼내놓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일선 당구장에서 활용되지 못했을까. 지난 16일 서울에 있는 롤링스톤 당구클럽에서 만난 홍문기는 “16년간 보급 활동을 했지만 용어 사용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일부 방송에서 유사한 형태로 우리말을 쓰려고 하는데 사실 실효성 문제가 있다”며 “일본어와 비교해서 우리말이 너무 길다. 가장 많이 쓰이는 바깥돌리기만 해도 일본어로 우라, 우라마와시 등으로 표현한다. 일본어 특징이 받침이 없어서 발음하기 편하다. 알게 모르게 대중들은 편리한 용어에 익숙해져 있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구 용어가 흔히 막노동판에서 쓰는 용어와 비슷하다. 일제 잔재가 넘어왔을 때 변하지 않은 것들이다. 국내에서 프로 당구가 출범했는데 이 부분을 정리하지 않으면 공신력 있는 단체로 거듭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대한당구연맹(KBF)은 물론 세계캐롬연맹(UMB)에서도 용어에 대한 별도 지침서는 없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 일본어나 비속어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됐다. 언어는 문화를 소비하는 개념이고 정서가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국내 당구열기에 힘입어 프로리그까지 출범한 마당에 용어 정립은 필수적인 일이다. 다행히 PBA 역시 용어 규정에 필요성을 인지하고 지난 5월30일 용어 정리 작업에 돛을 올렸다. 원로 당구인을 비롯해 각계각층 당구인과 머리를 맞대고 7~8월 4차례 회의를 거쳐 최근 1차 용어 정리안을 꺼내들었다. 다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홍문기는 “최근 (파급력이 좋은) 동영상 사이트 등에 당구 관련 프로그램이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일본어, 비속어를 사용하더라”며 “황당한 마음에 댓글난에 ‘방송인데 이런 용어를 쓰면 되겠냐’고 글을 남겼다. 프로그램 관계자가 ‘그러면 일본 큐도 쓰지 말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더라. 정말 무책임하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최근 프로 출범과 함께 늘어난 중계방송에서 30초 짜리 캠페인 형식이라도 우리말을 알리는 등 일상 속으로 파고들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당구클럽을 운영 중인데 삼일절이나 광복절, 한글날 등에 맞춰 용어 순화와 관련한 이벤트도 열고 있다. “교육이나 문화는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한 그는 “지금부터 당구를 배우는 어린 선수 등 세대가 바뀌는 시점에서 보급 사업을 장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프로 선수가 정통성과 소명 의식을 갖고 실천했으면 한다”면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걸림돌도 있다. 그는 우리말 연구 과정을 더듬더니 “당구가 외국에서 들어와 영미권 국가와 의미 해석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바깥돌리기’는 우리 입장에서 아웃사이드의 개념이나, 영미권 국가에서는 ‘인사이드’라고 한다. 즉 ‘회전에 관점을 두느냐, 각에 관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르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프로당구가 출범했고 전 세계 톱랭커가 몰려들고 있는 만큼 PBA 뿐 아니라 대한당구연맹이 한글화 사업에 뜻을 모으면 파급력이 있으리라고 여긴다. 홍문기는 “한 번쯤은 세종대왕배 대회에서 외국 선수가 유니폼에 한글 패치를 붙이고 샷을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누군가 바꿔주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나부터, 우리부터 실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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