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범은 기성용과 구자철이 한꺼번에 은퇴한 대표팀의 중원에서 새로운 기둥이 될 선수로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숨은 주역이 됐고, 곧이어 파울루 벤투 감독이 취임한 A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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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범은 기성용과 구자철이 한꺼번에 은퇴한 대표팀의 중원에서 새로운 기둥이 될 선수로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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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범은 기성용과 구자철이 한꺼번에 은퇴한 대표팀의 중원에서 새로운 기둥이 될 선수로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숨은 주역이 됐고, 곧이어 파울루 벤투 감독이 취임한 A대표팀에도 선발됐다. 첫 발탁 이후 황인범은 단 한 차례도 소집 명단에서 배제된 적이 없을 정도로 벤투 감독의 신임을 받고 있다. 1년 사이 A매치를 17경기나 소화했다. 


아시안컵을 거치며 황인범의 팀 내 비중은 더 커졌다. 남태희가 11월 A매치에서 무릎 부상을 당했고, 권창훈도 아직 부상 여파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강인은 아시안컵에 오기엔 성인 무대에서의 검증이 애매한 시점이었다. 대회 중에는 기성용, 이재성, 황희찬 등 여러 부상자가 발생해 손흥민이 공격형 미드필더를 보는 일까지 나왔다. 황인범은 중원에서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옵션이 돼 버렸다.

그 과정에서 황인범의 특징이 어떤 선수보다 도드라졌다. 황인범은 최근 육각형이라고 언급되는, 해당 포지션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고루 갖춘 선수다. 미드필더 전 포지션에서 벤투 감독의 빌드업 전술에서 기본 형태인 3자 플레이에 관여할 수 있다. 공을 갖고 있지 않을 때의 오프더볼 움직임 이후의 안정적인 원터치 패스가 뛰어나다. 패스 전개 시의 시야도 준수해 경기 운영 능력도 합격점을 줄만 하다.

무엇보다 수비적인 부분에서의 커버 범위 엄청나게 넓다는 것은 벤투 감독이 현재 쥐고 있는 중앙 미드필드 옵션 중에서 황인범이 경쟁력을 발휘하는 최대 장점이다. 이 부분은 중계 카메라로 쉽게 보이지 않다 보니 평가절하 되지만 실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황인범의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6월의 이란전과 이번 조지아전을 비교하면 황인범이 있을 때의 백승호와 없을 때의 백승호가 수비적인 면에서 어떤 차이를 보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포백 전술에서 미드필드의 중앙과 측면, 2선과 3선의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대표팀의 유일한 선수라는 것도 황인범의 대표적 경쟁력이다. 이강인, 김보경, 남태희 등 어떤 선수도 가지지 못한 장점이다. 지난 10여년을 봐도 대표팀에서는 구자철 정도가 이런 역할이 가능했다. 벤투 감독이 선수에 대한 평가를 절대 빠트리지 않는 항목 중 하나가 ‘멀티 포지션’인데, 황인범은 그 덕목을 가장 잘 갖췄다.

종합하면 동료와 주고받는 안정적인 패스 능력과 기동력을 기반으로 한 뛰어난 수비 가담, 경기 상황에 따라 복수의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황인범은 팀의 공수 밸런스 유지와 변수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키맨이 되는 선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아시안컵 이후 벤투 감독의 플랜A가 기존의 4-2-3-1 전형에서 4-1-3-2로 전환되면서 황인범의 경쟁력과 팀 내 입지가 더 확장됐다. 벤투 감독은 4-1-3-2를 기본으로 유지하다가 4-3-3으로도 전환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변화를 위한 전술적 기어다. 팀의 틀을 유지하게 해주는 보험과 같은 선수가 황인범인 것이다.

문제는 현재 황인범이 기본적으로 소화하는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일반적으로 팬들이 기대하는 키패서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아쉽다는 점이다. 상대 수비라인을 단숨에 깨는 모험적이고 과감한 킬러 패스는 득점 이상으로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경기 후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인 흐름과 과정보다 특정 장면으로 컨텐츠를 소비하는 ‘움짤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단숨에 경기를 바꾸는 ‘크랙’에 비중을 둔다면 분명 황인범은 이강인, 남태희, 김보경에 밀린다. 하지만 정작 벤투 감독의 전술 컨셉은 다르다. 그는 빌드업 과정에서 다수의 선수가 함께 기여하고, 수비의 몫도 특정 선수에게 절대적인 짊을 맡기지 않는다. 90분 내내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 선수를 원한다. 2선 미드필드 한 자리에 이재성이 확실히 자리를 꿰찬 점이나, 개성이 더 확실한 공격수들이 아닌 나상호가 꾸준히 기용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벤투 감독의 성향을 파악한다면 왜 그가 황인범을 중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밖에서 보기엔 쉽게 납득가지 않지만 감독이 전술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는 선수가 존재한다. A대표팀의 역사를 보면 거스 히딩크 감독에겐 유상철과 김남일,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겐 이호, 신태용 감독에겐 장현수가 해당한다. 그들은 감독의 전술적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요소는 양면성이 있다. 성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감독의 고집으로 지적받고, 저항받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인 결과물이 나오면 신의 한 수로 재평가된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최고의 패서였던 윤정환이 아닌 유상철과 김남일을 중용하며 미드필드진의 기동력과 세컨드볼 점유에 전술적 초점을 맞췄던 히딩크 감독의 성공은 ‘마이웨이’로 표현되는, 자신의 방식과 철학의 승리기도 했다.

반면 결과가 긍정적이지 못할 경우 감독과 함께 비극적 운명을 맞는 케이스도 있다. 실패의 원인이 모두 그 선택에 있었다는 듯 집중되며 ‘그것 봐라’는 식의 여론 폭발이 벌어진다. 팀스포츠에서 선수 한명으로 실패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복잡한 공식을 이해하기보다는 하나의 원인에 비난을 집중한다. 일부는 성공을 위해 물이 차길 바라는 게 아니라, 넘쳐서 흔들리길 빌며 비난이라는 물방울을 하나씩 떨어트리는 모습도 나온다.  

지금 황인범을 힘들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벤투 감독이다. 황인범은 단지 전술적으로 요구되는 플레이를 헌신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 포지션에서 선수는 모든 걸 잘해야 한다. 남태희는 공격적으로 탁월했지만 수비 가담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아직 단 한 차례 기회를 받았을 뿐인 이강인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롭기 어렵다. 최근 정우영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전술에서 황인범이나 이재성이 뛰는 포지션과 맡은 역할은 실수가 유발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지만 그 실수를 과정을 위한 시행착오나 성장통으로 보는 시선은 없다.

만일 황인범이 A대표팀에서 2선의 중앙이 아니라 3선에서 보다 수비적인 파트너와 공존할 수 있는 선수로서 더 증명했다면 어땠을까? 황인범이 대표팀에서 최고의 역량을 보여준 지난해 아시안컵 이전의 친선전들 생각해 보자. 지금 황인범의 자리에는 남태희가 있었고, 황인범은 그 아래에서 정우영과 협력했다. 밸런스를 맞춰줄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니라 공격을 지원할 수 있는 3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을 때 황인범의 활약은 상당히 호평 받았다.

4-1-3-2 전형이 플랜A가 된 상황에서 가능성이 높지 않은 얘기다. 결국 현재 벤투 감독이 택한 전형, 전술, 컨셉 안에서 황인범은 계속 대중의 비판적 시선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감독의 신뢰는 반가운 일이지만, 어린 선수는 외부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이 있을 것이다. 그 역시 올해 초를 기점으로 이동거리가 많은 해외파가 됐기 때문에 육체적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다. 그 두 가지 문제가 겹치면 선수는 심각하게 마모될 수 있다. 

치명적인 실패가 없는 이상 벤투 감독은 황인범을 현재처럼 계속 중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처럼 A대표팀 안에서의 평가와 바깥에서의 평가가 치열하게 충돌하는 상황에서, 이런 게 국가대표니까 선수가 다 감내하라고 하는 것도 부당하다.

구자철과 기성용은 A대표팀에서 물러난 뒤 “우리는 대표팀에서 전혀 즐기지 못했다. 후배들은 부담감에 눌리지 않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나란히 말했다. 국가대표라서 표현하지 못할 뿐이었던 정신적 스트레스는 갓 서른이 된 선수들의 조기 A대표팀 은퇴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황인범에게 가해지는 가혹할 수준의 린치를 보며 그들의 말에 동조하고 반성하던 분위기가 금세 사라진 것 같아 슬프고, 이강인이나 백승호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으니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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