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성민규 단장 "한국선 인위적 리빌딩 불가능…1군은 싸워야"
새 감독 기준은 "선수들이 좋아하는 지도자가 첫번째"
(부산=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2011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의 야구 운영 부문 사장으로 부임한 시오 엡스타인은 2016년 '염소의 저주'를 끝냈다.
한국의 엡스타인을 꿈꾸는 롯데 자이언츠의 성민규(37) 신임 단장은 과연 거인의 해묵은 우승 한을 풀 수 있을까.
성 신임 단장은 4일 부산 사직구장과 2군 구장인 상동구장을 오가며 구단 직원들에 이어 1·2군 선수단과 상견례를 하는 등 단장으로서 공식 행보를 시작했다.
그는 공필성 감독대행과도 그라운드에서 인사를 나눈 뒤 취재진과 만나 자신의 철학과 계획을 소상히 밝혔다.
성 단장이 기자회견에서 시종일관 강조한 것은 '프로세스'다. 야구와 관련한 모든 결정을 시스템에 기반해서 하겠다는 것이다.
'프로세스 야구'는 엡스타인 사장의 철학이기도 하다.
과정이 훌륭하면 결과가 실패로 끝나도 언젠가는 좋은 결과를 낸다는 그 철학을 발판으로 엡스타인 사장은 컵스에 10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성 단장은 "내 야구 철학은 첫 번째도 프로세스, 두 번째도 프로세스"라며 "뭐든지 과정이 있어야 한다. 내년 시즌 철학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프로세스를 만들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차기 감독 선정도 프로세스에 기반해서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 단장은 "롯데라는 팀의 특성을 파악한 뒤 어떤 유형의 감독이 오는 게 맞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그저 '이 감독 합시다' 말하는 것은 내 프로세스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했다.
자신을 데이터 신봉자로 표현한 성 단장은 그러나 프로세스를 통해 적임자로 결론이 나온 감독이라면 데이터를 몰라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의 첫 번째 조건은 선수가 좋아하는 지도자다. 선수단을 잘 통솔하고 컨트롤할 수 있다면 데이터를 몰라도 된다. 데이터 전문가를 따로 붙이면 된다. 롯데에 맞는 감독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단장은 대구상고와 미국 네브라스카대를 졸업한 뒤 2007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해 2군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그해 11월 말 방출됐다.
이후 컵스의 마이너리그팀 코치, 컵스의 태평양지역 스카우트 슈퍼바이저 등을 지냈다. 2012년부터는 국내 케이블 채널인 MBC스포츠플러스에서 메이저리그 방송 해설을 했다.
다음은 성민규 신임 단장과의 일문일답.
-- 단장을 맡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 3주 전에 롯데 구단에서 연락을 받고 김종인 사장님과 인터뷰를 했다. 열흘 전에 인터뷰를 한 번 더 했다. 확정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과정이 생각보다 길었다.
-- 두 차례 인터뷰에서 본인이 강조한 내용은.
▲ 미국에서 유행하는 (이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유망주를 잡고자 그해 성적을 포기하는) 탱킹, 리빌딩 등은 한국 시스템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은 5위까지 포스트시즌에 나간다. 트레이드가 원활하지 않고, 신인 드래프트 풀도 넓지 않다. 내가 감독이라도 6, 7위를 하고 있으면 5위 욕심이 날 것 같다. 한국에서 인위적인 리빌딩은 불가능하고,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일단 1군은 성적을 내기 위해 싸우고, 2군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선수들이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좋은 코치진, 좋은 선수를 확보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프로세스가 확립되면 당장 성적이 나지 않더라도 나중에는 계속 이길 수 있는 팀이 될 수 있다. 강팀이 되는 팀들을 보면 프로세스가 있었다.
-- 나이 때문에 선임 때 '파격'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부담도 있을 것 같은데.
▲ 부담감은 특별히 없다. 어릴 때부터 항상 다른 이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을 좋아했다. 다만 경력이 짧고 미국에서 왔기 때문에 건방져 보일 수 있기에 겸손하고 조심해야 할 것 같다.
-- 팀 성적이 최하위인데,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 어차피 야구는 프런트, 감독, 코치가 하는 게 아니라 선수가 하는 것이다. 좋은 선수 보강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선 신인 드래프트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 좋은 자유계약선수(FA)를 영입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부터 9개 구단 선수를 파악하는 게 첫걸음이다.
-- 롯데는 4∼5년 동안 외국인 선수 영입에서 특별하게 성과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선임에 대한 기대가 크다.
▲ 저스틴 헤일리(전 삼성 라이온즈)는 스프링캠프 당시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즌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미국 시절 쌓은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외국인 선수들을 고를 수는 있지만 성공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기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있다.
-- 밖에서 본 롯데는 어떤 팀이었나.
▲ 야구장 오면 난리 나는 팀 아닌가. 최고의 인기, 팬들을 가진 좋은 팀이다. 경남 팜(Farm)도 좋다. 언제든 충분히 성적 낼 수 있는 팀이라고 본다.
-- 사직보다 상동 많이 가겠다는 인터뷰가 있던데.
▲ 단장이라면 1군 경기를 매일 따라다닐 필요가 없다. 나는 1군 감독님이 싸울 수 있는 최상의 여건을 만들어드리면 된다. 경기는 직접 보거나 TV로도 볼 수 있다. 육성에 왕도는 없지만, 젊은 선수를 매일 경기에 뛰게 하는 것이 육성이 아니다. 마이너리그에선 선수 육성을 위해 선수들이 어떻게 잠을 자야 더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슬립(Sleep) 스페셜리스트를 영입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국내에서 그런 방법들이 통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해보고 데이터를 남기는 게 프로세스다. 비싼 FA 선수를 데려와 성적을 낼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하는 게 내 임무라고 본다. 좋은 코치가 있다면 경력이 없더라도 영입해 선수들을 돕게 할 생각이다. 마이너리그에선 메이저리그 경험이 없는 대학 코치들이 선수 육성에 특화됐다는 이유로 데려오는 경우도 많다. 나도 이런 코치가 있다면 영입할 것이다. 선수가 필요하다면 뭐든 할 것이다.
--자신만의 야구 철학이 있다면.
▲ 첫 번째도 프로세스, 두 번째도 프로세스다. 뭐든지 과정이 있어야 한다. 내년 시즌 철학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프로세스를 만들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먼저 사직구장이 타자 친화적인 구장인지, 투수 친화적인 구장인지 알아보는 것도 프로세스를 만드는 한 과정이다. KBO 리그는 올 시즌 공인구 변화로 OPS(출루율+장타율)가 8푼 정도 떨어졌다. 이런 부분에서 내년 시즌 투수-타자 보강 여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상황에 맞게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 팀이 그래서 중요하다. 세이버메트릭스 같은 기록은 많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를 야구인의 시각에 맞게 바꿔서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 이래저래 정신이 없을 듯하다.
▲사실 어제도 (부산 기장군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일본의) 사사키 로키를 보기 위해 자정까지 비를 맞고 기다렸다. 오늘 여기에 올 마땅한 옷이 없어 부산에서 새로 샀다(웃음).
-- 새 감독 선임 기준은.
▲ 롯데라는 팀의 특성에 맞게 어떤 유형의 감독이 오는 게 맞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저 '이 감독 합시다' 말하는 것은 내 프로세스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 그동안 롯데가 모기업 간섭을 많이 받아온 부분 때문에 행보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 프로세스를 지킨다면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더라도 보여드릴 근거가 있다. 설득을 못 시킨다면 내 능력 부족이다. 회사에서 오더가 내려오는 것은 당연하다. 내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회사를 설득시킬 수 있는 프로세스를 어떻게 만들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 데이터 활용이 새 감독 선임의 기준이 되는가.
▲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내부에서 회의를 시작할 것이다. 우리에게 맞는 야구, 지금까지의 문제점 등을 분석하고 감독 인터뷰를 해볼 것이다. 우리만의 방향을 정하는 게 우선이다. 나는 데이터를 신봉하는 사람이고 컵스에서 승진할 수 있었던 배경도 데이터를 가까이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데이터 활용이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님의 첫 조건은 선수가 좋아하는 지도자다. 선수단을 잘 통솔하고 컨트롤할 수 있다면 데이터를 몰라도 된다. 데이터 전문가를 따로 붙이면 된다. 롯데에 맞는 감독을 찾아 나서야 한다.
-- 대표이사는 3년 내 우승권 진입을 공약했다.
▲ 뭐부터 해야 할지가 굉장히 복잡한 게 사실이다. 컵스 시절을 돌아보면, 컵스는 내가 첫발을 내디딘 이후 3년 동안 주먹구구식 팀이었다. 하지만 시오 엡스타인 사장이 온 뒤 최대한 시간을 줄여가며 프로세스를 접목했다. 이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 한다.
-- 인적 쇄신없이 프로세스 도입이 가능하다고 보나.
▲ 지금 계신 코치님들이 프로세스를 잘 받아들인다면 교체는 없을 것이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프런트, 코치진도 교육이 필요하고 팀이 이기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뭔가 딱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그저 단장으로 선수단 관리 잘하겠다가 아니라,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다.
ㅡㅡ지우지 말아 주세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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