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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리드, KBL 외인 시대 문을 열다

1997년, KBL은 출범과 동시에 외국 선수 제도를 도입했다. 첫해 수준급 외국 선수가 쏟아진 가운데, 많은 화제를 모은 선수는 클리프 리드(190cm)였다. 그는 단신의 키에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20년이 지났기에 농구팬들에게 오래된 기억이었던, 리드에 관한 이야기를 <바스켓코리아>에서 되짚어보았다.

리드, KBL 초대 챔피언에 오르다
농구대잔치의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1996년. 한국 농구계는 프로 출범을 앞두고 있었다. 새롭게 탄생하는 KBL이 채택한 가장 큰 변화는 외국 선수 제도 도입이었다. 축구와 야구처럼 새로운 얼굴들을 영입해 경기력 향상과 볼거리 제공을 동시에 꾀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1996년 11월 11일 LA에서 최초의 외국 선수 드래프트도 실시했다. 이틀간의 트라이아웃을 거쳐 영광의 1순위에 지목된 선수는 클리프 리드. 작은 신장에도 엄청난 점프력을 자랑한 그를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에서 재빠르게 선발했다.

뉴멕시코 대학 출신인 리드는 졸업반 시절 팀의 BIG WEST 컨퍼런스 우승에 일조했다(현재 뉴멕시코 대학은 WAC 컨퍼런스로 옮겼다). 그는 블록슛과 리바운드에서 재능을 보일 뿐 아니라 프로 첫 커리어를 시작한 필리핀에서 평균 16.0점을 올린 만큼 득점력도 좋았다. 기아는 이러한 점을 높이 평가해 리드에게 1순위를 안긴 것이다.

다만, 걱정은 있었다. 당시에도 190cm의 선수에게 골밑을 맡긴다는 것은 물음표가 존재했다. 제아무리 운동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높이에서 열세가 예상되는 바였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개막전부터 사라졌다. 리드는 KBL 출범 후 첫 경기에서 31점 1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다. 단신임에도 리바운드 능력이 매우 좋았고, 골밑에서 득점력 역시 출중했다.

리드가 좋은 기량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기아는 우승 후보로 꼽히기 시작했다. 국내 선수로는 허재, 김영만, 강동희, 김유택 등이 버티고 있었고, 다른 외국 선수인 로버트 윌커슨 역시 준수한 기량을 가졌기 때문.

이를 증명하듯, 기아는 개막 4연승을 달렸다. 잠시 연승이 끊기기도 했으나, 1라운드 6승 1패로 선두권을 유지했다. 리드는 1라운드 평균 27.4점 10.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수준급 외국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리드와 함께 상승세를 탄 기아는 이후 순조롭게 1위 자리를 지켜나갔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16승 5패. 2위 안양 SBS 스타즈를 두 경기 차로 따돌렸다. 정규시즌 1위의 일등 공신은 단연 리드. 내로라하는 국내 선수들을 제치고 팀 내에서 가장 많은 22.4점을 책임졌고, 10.7리바운드(4위)와 1.2개의 블록슛(2위)은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순위였다.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기아는 챔프전 티켓을 두고 대구 동양과 맞붙었다. 정규시즌 성적은 한 수 아래였던 동양이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달랐다. 전희철-김병철-토니 매디슨이 포진했던 동양은 생각보다 강한 응집력을 가지고 있었고, 1차전을 가져갔다.

예상 밖의 일격을 당한 기아는 빠르게 회복했다. 2,3차전 리드와 윌커슨 듀오의 활약 아래 김영만과 강동희도 득점력을 가동하며 내리 두 게임을 잡았다. 4차전 다시 패하기도 했지만, 기아는 5,6차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하고 챔프전에 오를 수 있었다.

초대 우승을 놓고 만난 팀은 원주 나래. 칼레이 해리스-제이슨 윌리포드 듀오가 존재하던 팀이었다.

기선제압이 중요했던 1차전, 기아는 나래에게 덜미를 잡혔다. 각 팀의 1옵션이었던 리드와 윌리포드는 27점 12리바운드로 동일한 기록을 남겼지만, 국내 선수 차이에서 갈렸다. 나래에서는 정인교가 28점을 올린 반면 기아는 믿었던 강동희와 김영만이 침묵했다.

챔프전에서도 선취점을 빼앗긴 기아는 2차전부터 정신을 차렸다. 국내 선수들이 분전하면서 리드가 8점을 올렸음에도 승리했다.

한 경기 부진했던 리드는 3,4,5차전에서 각각 16점, 19점, 17점을 기록하면서 참회의 활약을 펼쳤다. 나머지 선수들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고, 기아는 손쉽게 4연승을 거두면서 초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기아에 있었던 이훈재 현 하나원큐 감독은 “첫 경기 진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되었다”며 “리드는 윌리포드와의 자존심 싸움 때문에 경기를 그르친 것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팀이 우승하는 데에 있어 리드의 공이 매우 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듯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리드는 한국 무대 첫해 우승의 영광을 누리며 성공적인 한 해를 마쳤다.

클리프 리드, 집중견제에도 경쟁력을 유지하다
클리프 리드가 ‘히트’를 치자 다른 팀들의 외국 선수 영입 기준도 리드에게 맞춰졌다. 리드보다 키 크고, 잘하는 센터들을 데려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아는 전혀 개의치 않고 리드와 재계약을 맺었다. 실력도 좋을뿐더러 단신 외국 선수 기준(6.3피트, 190.5cm 이하)에 속하는 리드와 같이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아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리드는 여전히 KBL 골밑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득점(17.7점)은 조금 감소했지만, 리바운드(13.7개)는 여전히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리드는 그대로였어도 팀은 예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김유택과 허재는 노쇠화가 뚜렷해졌다. 다른 외인인 저스틴 피닉스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이었다. 강동희와 김영만의 활약이 한 줄기 희망이었지만, 이들이 부진했을 때 도와줄 선수들이 없었다. 이로 인해 기아는 정규시즌 26승 19패를 기록, 순위가 3위까지 하락했다.

그렇게 올라가게 된 플레이오프. 기아는 인천 대우 제우스와의 6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리드의 부상이라는 악재를 맞았다. 리드의 부재로 인해 팀도 패했다.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리드는 바로 다음 경기에 돌아왔고, 언제 아팠냐는 듯이 11점 15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했다. 기아도 3차전을 잡으면서 시리즈 우위를 점했다. 리드는 4차전에서도 19점 16리바운드로 날아다녔고, 기아는 3승 1패로 4강에 오를 수 있었다.

기세를 탄 기아의 상대는 경남 LG 세이커스. 버나드 블런트, 로버트 보이킨스, 오성식 등이 포진한 팀이었지만, 리드를 막을 수는 없었다. 리드는 시리즈 내내 골밑에서 활개를 쳤다. 특히, 승부를 결정짓는 4차전에 24점 30리바운드라는 괴물 같은 기록도 작성하며 팀에게 챔프전 티켓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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