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부탁 "인천에 미안한 마음은 꼭 좀 전해주세요"
"이 사진, 정말 좋네요. 벌써 작년 얘기네요."
사진을 둘러보던 유상철 인천 명예 감독이 멈춰 섰다. 사진 속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고 있었다. 잠시 인천 사령탑 시절을 추억하는 듯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눈은 빙긋 웃고 있었다.
그와 만난 건 지난달 29일, 서울과 인천의 K리그 경기를 3시간 여 앞둔 시각, 지난 겨울 '유상철 사진전'이 열렸던 풋볼팬타지움에서였다. 코로나19 여파로 휴관 중이었던 팬타지움은 유 감독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당시 사진전을 재현했다.
"어머님께서 사진전을 보며 무척 자랑스러워 하셨어요." 정의석 팬타지움 대표의 말에 유 감독은 낮은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했다. 지난해 12월, 췌장암 투병 중인 유 감독을 위한 사진전이 열렸을 때, 정작 사진 속 주인공은 한 번도 전시장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7개월. 13차례 항암 주사 치료를 마친 그는 원기를 다소 회복한 모습이었다. 사진전을 둘러보던 '불굴의 사나이'는 제자들의 영상 메시지가 상영되는 곳에서 발 길을 거꾸로 돌렸다. "이건 안 볼래." 그날 그는 몇 차례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마다 그는 말을 멈추고, 숨을 크게 몰아 쉬며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인터뷰 시작 전 유 감독은 딱 한 가지를 당부했다.
"인천에 참 미안해요. 이 마음은 꼭 좀 전해주세요."
[SBS 뉴스 사이트에서 해당 동영상 보기]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865065&plink=YOUTUBE&cooper=DAUM ]
Q.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난 화요일(6월 25일)에 입원해서 마지막 항암 주사 치료를 마치고 목요일에 퇴원했어요. 이제 주사치료를 마치고 먹는 약으로 바꾸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Q. 항암 치료가 무척 힘들다지요?
"사람마다 부작용이 다른 것 같아요. 말로는 전달이 안 될 것 같아요.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느낌을 잘 모르니까. 많이 힘들었죠.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Q. 지금 이렇게 밝은 표정으로 얘기하니, 잘 와닿지는 않네요.
"주사를 맞으러 가야 되는 날이 오면 도망가고 싶어요. 포기하고 싶고. 횟수가 넘어가면 넘어갈 수록 공포감이 와요. 그 느낌을 아니까. 티를 내지 않는 성격이에요. 제가 힘들어하면 주위 사람들이 더 힘드니까. 한 두 번 정도는 고열로 응급실에 갔어요. 한 번은 직접 운전해서 갔는데, 한 번은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구급차 신세를 졌죠."
Q. 힘을 내야할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누구였나요?
그는 이 질문에 한 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조금씩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머니죠….어머니 생각이 제일 많이 나죠."
그는 호흡을 정리하며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참 대단하셨던 것 같아요. 잠깐만요…후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느새 눈물이 차 올랐다. 같은 병과 싸우던 어머니는 지난 3월,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던 아들 곁을 떠났다. 아들이 경기 중 부상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걸 알고는 당신의 눈을 주겠다고 하셨던 어머니였다.
"저는 13번인데, 어머니는 서른 몇 번인가를 항암치료를 하셨어요. 젊은 나도 이렇게 힘든데. 그거를 힘들다는 얘기를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더 힘들다는 얘기를 못하겠어요."
한동안 그의 숨소리만 들었다. 힘이 되는 질문을 떠올렸다.
Q. '유상철'하면 '불굴의 사나이'였어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한일전 동점골, 1998년 월드컵 벨기에전 동점골,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 결승골 등 절망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극적인 골을 많이 터트렸죠. 월드컵 첫 승을 확정한 폴란드전 쐐기 골도 있었고요. 어떤 골이 제일 기억에 남나요?
"다 기억에 남죠. 잊고 싶어도 잊혀질 수가 없는 골은 한일 월드컵 골이겠죠. 사상 첫 승에 그렇게 바라던 16강에 발판을 놓은 골이니까요."
Q. 유상철은 유니폼이 찢어지고, 눈두덩이가 찢어져도 포기하지 않았죠. 특히 컨페드컵 개막전에서 프랑스에 5대0으로 지면서 히딩크 감독 경질설까지 나왔던 2001년, 바로 다음 경기 멕시코를 상대로 코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헤딩 결승골을 터트렸잖아요.
"모르겠어요. 아마 절실했던 것 같아요. 저에겐 '우리'라는 가치가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팀, 우리 선수가 잘 됐으면 좋겠고, 이겼으면 좋겠고, 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런 마음이 강하다 보니까. 사실 코뼈 부러지고 헤딩하는 건 해서는 안 될 짓이죠."
Q. 인천 선수들에 대한 마음도 그런 간절함이겠죠?
"그렇죠. 우리 선수들, 고맙고 미안하죠. 팬들에게도 미안하고. 지난해 그렇게 1부리그에 살아 남고, 제가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올 해는 좀 더 팀이 나아질 수 있었는데. 내가 몸이 아프면서 팀을 지켜주지 못하니까. 빨리 치료해서 팀에 힘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만들고 싶어요."
Q. 건강해져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죠. 지금 정확한 몸 상태는요?
"치료가 힘들어도 잘 이겨내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서 많이 참았던 것 같아요. 치료가 계속 수월할 수는 없잖아요. 몸 상태가 오르락내리락해요. 그래도 운동 선수 출신이라 체력이 비축된 상황에서 치료를 받아서 그런지 많이 호전 됐어요. CT나 MRI, 검사를 했을 때 제가 육안으로 보기에도 차이가 있고 많이 좋아졌어요."
Q. 치료 중에도 종종 경기장을 찾으셨죠.
"경기장에 오면 마음이 편해요. 잔디를 보면 마음이 뻥 뚫리고. 제가 해왔던 일이라 그런지 집중도 되고. 다른 생각은 잊을 수 있거든요."
Q. 그래도 인천의 성적 때문에 마음이 썩 좋지는 않겠어요.
"안타깝죠. 내 제자들이고, 우리 팀이니까. 그런데 제가 계산을 해봤어요. 지금도 절대 늦지 않았어요. 조금만 정비하고, 선수보강하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지난해에도 비슷하게 자신감을 피력하신 적이 있잖아요. 인천엔 잔류 DNA가 있다고.
"그건 정말 무시 못합니다. 저도 처음엔 의심했어요. 무슨 DNA가 있나. 외면 하려했어요. 그런 표현에 의지하게 될까봐요. 하지만 팀 안에 있으면서 분명히 느꼈어요. 한 번도 우리가 떨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든 적이 없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이 있어요."
Q. 인천도, 감독님도 지금의 상황을 잘 이겨내야겠죠.
"전에도 얘기했지만 환자 중엔 저보다 더 안 좋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고,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 분들께 제가 이겨냈다는 걸 보여줘서 희망을 드리고 싶어요. 다시 그라운드에서 찾아 뵐 수 있게끔 치료 잘하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인천은 서울에 지며 7연패에 빠졌다. 임완섭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다. 유상철 감독은 구단에 강하게 복귀 의사를 피력했다. 인천은 고심했다. 건강을 염려한 주치의 의견에 따라 유 감독의 뜻을 고사했다. 코가 부러진 채로 헤딩 결승골을 넣었던 그였지만 이번엔 그 책임감을 잠시 접어 두었으면 좋겠다. '우리'보다 자신부터 챙기도록 주위에서 도왔으면 좋겠다. 늘 그래왔듯 '불굴의 사나이'가 몹쓸 병도 이겨낼 수 있도록.
이정찬 기자jayc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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