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월급은 깎지 않는다..."134년 역사 중 가장 힘든 시기"에도 자존심 지킨 아스널

[일간스포츠 김희선]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자존심을 지킨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널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경영진의 연봉을 삭감하고, 대신 직원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결정이다.

현지 시간으로 15일, 아스널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리그가 중단된 상황 속에서 많은 구단들이 재정적 위기를 맞이한 가운데, 아스널은 "구단의 134년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 중 하나"라면서도 직원들을 지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스널은 이번 성명을 통해 "경영진이 자발적으로 다음 12개월 동안 수입의 3분의 1 이상을 포기하기로 자원했다"며 "일반 직원들의 복지와 일자리, 급여를 보호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 모든 직원들은 임금의 전액을 받을 것이며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PL은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프로스포츠 시장 중 하나다. 전세계로 송출되는 EPL 리그 경기는 10억이 넘는 인구가 시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올 시즌 EPL 20개 구단의 매출액 합계는 무려 7조 9030억 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리그가 중단되면서 가장 큰 수익인 중계권료를 포함해 스폰서 비용, 티켓 수익 등 매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생겼다. 여기에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의 급여까지 더해지면 구단 재정은 휘청댈 수밖에 없다.

위기를 맞은 일부 구단들은 일반 직원들을 임시해고하는 조치를 취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영국 정부가 임시해고 직원에 대해 80%의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긴급 실업급여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하라는 조치였지만, '부자 구단'들의 이런 '꼼수'에 비난이 쏟아졌다. 딜로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19시즌 전세계 축구 구단 수익 10위 내에 올라있는 EPL 구단은 모두 5팀이다. 이 중 리그 내 수익 1, 2위를 다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는 직원들의 임금을 보전한 반면, 이들의 뒤를 이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리버풀과 토트넘의 대응 방식이 잘못됐다는 비난이다. 결국 리버풀과 토트넘 등은 해고 조치를 취소하고 고개를 숙였으나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대처 방식에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스널 역시 직원들을 보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경영진들의 연봉을 삭감해 일반 직원들의 임금을 보전하는 것 외에도 경기장 근로자들에 대해서도 5월 말까지 급여를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리그가 재개되어 다시 일하게 된다면 추가 임금도 지불하기로 했다. 선수들의 연봉 삭감에 대해선 여전히 대화를 통해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논의가 끝날 때까지 이 문제를 외부에 언급하는 일은 삼갈 것"이라는 태도를 견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정 위기가 EPL을 덮치면서 구단과 선수들간의 연봉 삭감 갈등, 직원 임시해고 등 민낯을 지켜봐야했던 팬들은 경영진이 스스로 연봉을 삭감하며 직원들을 지키는 아스널의 모습에 '명문 구단다운 모습'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아스널은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에 당신이 안전하고 서로를 보살피며 지내기를 바란다"며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대로 우리가 사랑하는 경기를 다시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덧붙였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