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한전맨’ 박철우의 꿈, “다시 우승을 목표로 도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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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8 22:43
박철우(35)가 역대 자유계약(FA) 공식 최고 몸값으로 한국전력에 입단했다는 소식은 현대건설 이다영의 흥국생명 이적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박철우의 FA 계약은 삼성화재 잔류가 당연시 됐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지난 20일 박철우와 연평균 7억 원(연봉 5억5000만 원, 옵션 1억5000만 원)씩 3년 총액 21억 원에 계약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실제 모든 계약은 17일에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배구를 대표하는 라이트 공격수 박철우는 어떤 과정을 통해 삼성화재에서 한국전력으로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된 걸까. 30대 중반의 나이에 역대 최고 몸값을 받고 프로 세 번째 팀을 만난 박철우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내용을 살펴봤다.
10년 전 현대캐피탈에서 FA를 통해 삼성화재로 이적했을 때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현대캐피탈 선수가 라이벌 팀으로 옮기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지만 곧 결혼하게 될 예비 장인이 감독(신치용)으로 있는 팀에서 뛰게 된 부분이 더 큰 화제를 모았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촌장님(신치용 진천선수촌장, 박철우는 장인인 신치용 촌장을 ‘촌장님’ ‘감독님’ ‘장인어른’ 등으로 표현했다)과의 인연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장인어른이시고, 한때 소속팀 감독이셨고, 지금은 한국전력 출신의 선후배가 되었으니까요. 촌장님을 처음 뵈었을 때가 2000년 인천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였어요. 체전 시합이 끝난 후 현장을 찾은 촌장님께 인사드린 적이 있었거든요. 배구 유망주라는 타이틀을 달고요. 4년 뒤 고교 졸업 후 프로에 가게 됐을 때 가장 먼저 영입 제의를 해온 팀이 삼성화재였습니다. 학교 사정으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게 됐지만 촌장님이 저를 데리고 가시려 했다는 사실은 기억에 남았어요.”
아내 신혜인 씨와의 만남은 당시 배구계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렸어요. 교제 기간 동안 다양한 에피소드도 많았을 텐데요.
“처음에는 혜인이만 보고 내달리다 어느 순간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가 신치용 감독이란 사실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현대캐피탈 소속 선수였을 때는 좋지 않은 소문도 많았습니다. 촌장님이 일부러 혜인이와 저를 만나게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서부터 혜인이가 ‘스파이’ 역할을 한다는 등등의 루머들이었죠. 지금 그때 일들을 떠올리면 웃음 밖에 나오지 않지만 한때 조금 심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 시선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혜인이한테 ‘당신 아버지가 신치용 감독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죠. 그럼에도 우리 둘 사이는 더욱 견고해졌어요. 장인어른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이요. 현대캐피탈 소속일 때는 어떻게 해서든 삼성화재를 이기고 싶었습니다. 안 좋은 소문을 잠재우려면 이기는 게 최선이겠더라고요. 물론 삼성화재의 벽을 넘어서진 못했지만요.”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다 삼성화재와 계약을 맺었을 때는 후련했겠어요.
“후련함을 느끼기 전에 현대캐피탈 팬들한테 너무 미안했습니다. 욕도 많이 먹었고요. 그때는 제 선택지가 삼성화재 밖에 없었거든요.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은 후에는 삼성화재 팬들한테 욕먹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삼성화재 입단 첫 해인 2010-2011시즌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우승을 독식하던 팀이 시즌 초반 꼴찌로 추락했으니까요.
“당시 감독님도, 저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대표팀과 소속팀을 이끌던 감독님도, 또 대표팀에 차출돼 삼성화재 컬러에 적응할 시간이 없던 저도 소속팀으로 돌아가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이대로 시즌이 끝나면 저를 영입한 감독님의 커리어가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도 스트레스 때문인지 제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신 터라 그 상황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그때 감독님은 팀이 꼴찌인데도 우리가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꼴찌 탈출을 목표로 하지 말고 챔피언을 향해 가자고요. 결국 선수들이 똘똘 뭉쳐서 연승을 이어갔습니다. 그해 정규시즌을 3위로 마무리한 후 2010-11시즌 준플레이오프 LIG손해보험과의 3,4위전에서 승리 후 플레이오프를 통해 현대캐피탈을 상대했고, 여기서 승기를 잡은 후 대한항공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4-0 승리로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정말 드라마 같은 시즌이었어요. 감독님이 그때는 아무 말씀 안하셨는데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사석에서 이런 속내를 들려주시더라고요. ‘철우, 너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그때는 잘리는 줄 알았다’라고. 제가 감독님과 함께 하는 동안 매 시즌마다 우승을 차지한 것도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박철우는 농구 선수 출신인 신혜인 씨와 2011년 9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2007년 1월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한 이후 4년 만에 가정을 꾸리게 된 것. 시하, 소율 두 딸을 두고 있는 박철우는 운동선수 커플의 장단점을 묻는 질문에 “선수 생활을 잘 이해해줘 좋은 반면에 너무 잘 알고 있어 곤란한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삼성화재에서 장인과 감독과 선수로 생활했을 때는 보너스, 수당 등이 모두 공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박철우하면 김요한, 문성민(현대캐피탈)과 함께 한국 배구의 공격수 트리오로 묶였는데요, 김요한, 문성민 선수는 대졸 출신이지만 박철우 선수는 고졸 출신으로 먼저 프로에 입단했다는 차이가 있을 거예요. 박철우 선수한테 두 선수는 어떤 존재였나요?
“서로가 서로를 보며 자극받고 더 잘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제가 두 선수들보다 조금 나았어요. 키가 컸거든요(웃음). 그때 키가 지금과 비슷했을 거예요(198cm). 요한이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키가 작은 편이었고요. 한 살 어린 성민이도 배구를 잘했지만 중학교 때는 키가 크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올라가서 학교 성적에 따라 서로 엎치락뒤치락 했던 것 같아요. 성민이를 청소년대표팀에서 만났을 때 에너지가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 친구가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을 때는 부러우면서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성민이 경기 영상을 많이 챙겨봤어요. 서로 폼은 다르지만 성민이의 스텝이랑 공격 타이밍을 맞추는 부분은 꼭 배우고 싶었거든요. 성민이는 제게 영감을 주는, 정말 존경하는 선수입니다. 요한이는 실력에 비해 너무 외모적인 면이 부각된 나머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더 잘 할 수 있는 선수인데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게 안타까운 따름입니다.”
ㅡㅡ지우지 말아 주세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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