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KCC 코치로 새 출발하는 신명호가 지난 20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남 | 박민규 선임기자
“낙수야. 정대만을 좀 봐봐. 역시 전반전의 네 수비가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서서히 힘을 빼는) 보디블로 같은 효과야.”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 나오는 산왕공고의 김낙수는 전국 최고의 수비 스페셜리스트다. 북산과의 경기에서 그는 전반전 내내 슈터 정대만을 찰거머리처럼 수비했고, 정대만은 후반 초반 지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낸다.

프로농구에도 김낙수처럼 상대 에이스를 철저하게 물고 늘어져 지치게 했던 수비 스페셜리스트가 있었다. 지난 15일 은퇴를 공식 발표한 신명호(37)는 공격에서 기여도는 바닥이었지만, 수비로 이를 만회하고 남은 KBL의 김낙수였다.

지난 20일 경기도 성남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명호는 “아직 은퇴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와닿는건 딱히 없다. 우리팀이 6월1일에 소집하는데 그 때가 돼야 실감이 좀 날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전주 KCC의 코치로 새 출발하는 신명호가 지난 20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남 | 박민규 선임기자
전주 KCC에서만 12시즌을 뛰고 은퇴한 신명호는 현역 시절 내내 ‘반쪽짜리 선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뛰었다. 무려 3차례나 수비 5걸에 이름을 올렸지만 형편없는 공격력은 늘 그의 발목을 잡았다. 노마크 상황에서 에어볼, 패슛(패스 같은 슛)이 빈번히 나왔다. 상대 감독들은 그런 그는 굳이 막지 말라는 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팀 감독이 작전타임 중 얘기한 “신명호는 놔두라고”는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밈(유행 요소를 응용해 만든 사진이나 동영상)이 됐다.

신명호는 “당시에는 (그 장면을 보고) 많이 서운했다. 하지만 상대 감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략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편안히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신명호는 수비 전문선수라는 말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기만 하다. 신명호는 “수비 스페셜리스트라고 하는데, 사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며 “다시 말하면 반쪽짜리 선수라는 얘기여서 개인적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주 KCC 코치로 새 출발하는 신명호가 지난 20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남 | 박민규 선임기자
사실 그의 공격력이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그랬으면 200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KCC가 함지훈(현대모비스), 김영환(KT) 같은 선수들을 거르고 1라운드 6순위로 지명했을리 없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계속되는 슛 실패는 자연스럽게 주눅이 들게했고, 트라우마까지 생겼다. 결국 이를 극복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신명호는 “잘한다고 하면 더 잘하게 되고 못한다고 하면 더 못하는 것들이 있지 않나. 사실 노마크에서 슛을 몇 번 실패하더라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고 생각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 때는 어린 나이에 뭔가 소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안되는걸 그렇게 잡고 있을 필요가 있나 싶지만, 당시에는 그것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게 트라우마로 굳어져버렸다”고 아쉬워했다.

공격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그는 더 악착같이 수비했다. “공격에서 마이너스가 되는 만큼 수비에서는 플러스가 되자는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상대보다 한 발씩 더 뛰려고 노력했다”는게 신명호의 설명이다. 김승현, 양동근, 김태술 등 상대 에이스 가드들을 지겹도록 막아야했고, 어느새 그는 KBL의 김낙수가 되어있었다. 그의 가치는 억대 연봉으로 치환됐고, 그를 지도한 감독들도 하나같이 그의 가치를 인정했다. 허재 전 감독은 “신명호가 슛만 있었다면 연봉 5억원을 받는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신명호는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기면 공격 쪽에서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아 60점 정도 주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잘했든 못했든 프로에서 12시즌이나 버틴 것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전주 KCC 코치로 새 출발하는 신명호가 지난 20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남 | 박민규 선임기자
12시즌을 KCC에서만 뛴 그는 이제 KCC의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 평생 KCC 외에 다른 팀은 생각도 못했던 그는 “KCC는 지금까지 내가 농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팀이다. 여기 외에 다른 팀은 생각도 못해봤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어 “이제 시작이라 어떤 코치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못하겠다. 다만 후배들이 속마음까지 내어줄 수 있도록, 편하게 다가고 싶다”고 말했다.

성남 |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