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버린 동행…KIA는 어디로 가나
KIA 김기태 감독이 16일 광주 kt전을 앞두고 자진사퇴를 발표했다. 2017년 우승을 이끌며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던 김기태의 형님 리더십은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동행을 멈췄다. KIA는 결국 박흥식 퓨처스 감독을 감독대행으로 선임하고 이튿날인 17일부터 대전 한화 3연전부터 지휘봉을 맡겼다. 지난주 핫이슈를 정리하는 '스포츠타임 와글와글'에서는 김기태 감독의 발자취와 KBO 역대 감독대행의 역사를 살펴보고, 박흥식 감독대행의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KIA호가 어디로 갈지 짚어본다.
▲ KIA 에이스 양현종이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승리한 뒤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는 도중 눈물을 머금고 퇴진한 전임 김기태 감독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SPOTV 스포츠타임 화면 캡처
◆중단된 동행야구, 멈춰버린 형님 리더십
2014년 10월, KIA는 당시 김기태 감독을 2년 계약기간으로 제8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전임 선동열 감독 재임 시절이던 2013년과 2014년 9개 팀 중 8위에 머물며 난파선처럼 표류하던 KIA호를 김 감독은 빠르게 수습하기 시작했다. 첫 해인 2015년 7위로 끌어올렸고,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KIA로 바뀐 뒤 3년 연속 가을잔치는 처음이었다. 특히 2017년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페넌트레이스 우승과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차지하면서 명장 반열에 올랐다.
김기태 감독의 형님 리더십은 집중 조명을 받았고, 그가 주창한 '동행'은 그해를 관통하는 아이콘이 됐다.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김기태식 리더십은 선수들에게 감동을 줬고, 그 에너지가 결국 우승까지 가는 동력이 됐다. 19일 대전 한화전 승리 후 양현종이 눈물의 인터뷰를 하는 것이나, 다른 선수들이 김 감독의 갑작스러운 퇴진에 눈물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그의 그림자가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팬들을 사랑하는 감독이었다. 늘 웃는 낯으로 팬서비스에 임했고, 팬들을 친절하게 대했다. KBO리그 역사상 한국시리즈 우승 후 팬들 앞에서 큰절을 한 감독은 김기태 감독 외에는 없었다. 팬들 역시 그런 김 감독을 열렬히 지지했다. KIA도 결국 계약기간 3년(2018~2020년)에 총액 20억 원에 재계약을 했다.
그러나 지난해 부상자 속출 속에 5위로 가까스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가고, 올해 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처지면서 팬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형님 리더십도, 동행야구도 동력을 잃었다. 급기야 최하위로 떨어지면서 올 시즌 100경기를 남겨둔 시점에 김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고 말았다. 임기를 1년 반가량 남기고 스스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5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퇴진했지만 3시즌 반(2001년~2004년 7월) 만에 물러난 김성한 감독을 넘어 김기태 감독은 KIA 타이거즈로 간판이 바뀐 뒤 역대 최장수 감독으로 이름을 남겼다. 해태 시절을 포함하더라도 18년간 장기집권한 김응용(1983~2000년)에 이어 타이거즈 역대 2위 최장수 감독이 됐다.
▲ KIA 김기태 감독은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팬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KBO리그 역사상 우승 후 그라운드에서 팬들에게 큰절을 한 유일한 감독이었다. ⓒSPOTV 스포츠타임 영상 캡처
◆KIA는 왜 우승 후 2년 만에 무너졌을까
우승을 차지한 2017년, 시즌에 앞서 누구도 KIA를 우승 후보로 꼽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선수들이 모두 '커리어 하이'의 성적을 올렸다. 투수 중에 양현종과 헥터 노에시가 거짓말 같이 20승을 함께 올리는 기적의 시즌을 만들었다. 김선빈은 타격왕에 오르고, FA 계약한 최형우는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로 자리 잡았다. 팀타율은 당시 역대 최고치인 0.302를 기록했다. 트레이드도 대박이 났다. SK에서 데려온 포수 김민식과 외야수 이명기는 알토란 활약을 펼쳤고, 넥센(현 키움)에서 영입한 김세현은 팀의 고질이었던 마무리투수 문제를 해결했다. 김기태 감독이 지휘한 2017년 기록한 87승은 타이거즈 구단 역사상 한 시즌 페넌트레이스 최다승 기록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착시현상이었는지 모른다. KIA의 가장 큰 약점은 김기태 감독이 오기 전에도, 부임한 뒤에도 선수층이 얇다는 점이었다. 지난해 김선빈이 발목 수술 관계로 2017년만큼 활약하지 못했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부상 선수들이 나오자 이를 대체할 자원이 부족했다. 베테랑 선수와 신진급 선수 사이의 나이 차이가 컸다. 중간층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연결고리가 약했다. 지난해 가까스로 5위에 턱걸이해 가을야구까지 갔지만 올해 얇은 선수층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올 시즌 베테랑들이 부진한 사이 박찬호 이창진 류승현을 비롯해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지만 다른 팀이 두려워할 만한 라인업은 잘 나오지 않았다. 김기태 감독도 바뀌는 야구 흐름과 주변 환경 속에서 변화에 둔감했다. 선수들도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했는지 반문해 본다면 결코 "그렇다"고 답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KIA 구단 역시 우승에 도취돼 긍정적인 시나리오만 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트레이드나 선수 육성, 외국인선수 선발 등 전력강화를 위한 후방 지원을 제대로 해줬는지 깊이 반성해야할 시점이다.
▲ KIA 김기태 감독은 2017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우승을 이끌어냈다. 타이거즈 역사상 11번째 우승이었다. KIA로 간판이 바뀐 뒤로 따지면 2009년에 이어 2번째 우승이었다.
◆베테랑 임창용 선수 방출…팬 여론 악화 지지층 붕괴
무엇보다 지난 시즌 후 베테랑 투수 임창용을 방출하는 과정에서 KIA 팬들의 큰 반발이 일어났다. 김기태 감독 퇴진 운동으로 이어지고 KIA 구단을 향해서도 민심이 이반됐다. 내부적인 갈등 관계와 팀 케미스트리에 문제가 발생한 베테랑 선수를 처리하는 문제는 구단의 몫이지만, 팬들에게 임창용은 단순한 선수 한 명이 아니었다.
구단과 감독, 선수가 좀 더 세련된 이별 방식을 만들었어야 했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1995년 해태에 입단해 24년간 현역 투수로 뛰어온 레전드 투수였다.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슈퍼스타와 갈등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내부적 갈등은 속이 썩더라도 물밑에서 조율하고, 외부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장해 팬들과 마지막 작별을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게 프로 구단이 해야 할 일이다. 선수와 구단이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지만, 이별을 잘 하는 것도 비즈니스다.
이는 비단 KIA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 KBO 차원에서도 곰곰이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물론 구단이 선수 한 명에게 끌려가는 것도 프로답지 못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24년간 KBO리그가 힘을 합쳐 투자하고 스타를 만든 기나긴 시간, 팬들이 선수와 함께 호흡하며 만든 겹겹의 추억들을 생각한다면 KBO리그 전체에서도 손해가 막심한 일이다. 최근 베테랑 경시 풍조 속에 다른 구단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과연 팬과 레전드의 이별식을 제대로 만들어가고 있는지, 진지한 성찰을 해봐야할 시점이다.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원해오던 팬들에게 KBO와 구단은 무엇을 남겨주고 있는가.
결국 '팬심'이 이반된 상황에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KIA 구단은 팬들의 비난 여론에 대응할 논리를 찾지 못했고, 탄탄했던 지지층은 급격하게 와해됐다. 이런 후폭풍으로 감독의 리더십에도 생채기가 나면서 여론 악화에 시달리고 말았다.
◆감독대행이 정식감독 승격될까…감독대행의 역사
KBO리그에서 역대로 한 번이라도 감독대행을 맡은 사람은 총 42명. 감독 징계 기간이나 감독의 건강상 문제로 경기를 지휘한 것까지 포함하면 총 59차례 감독대행 사례가 있었다. 그 중 유남호 전 KIA 감독은 감독대행만 역대 가장 많은 5차례나 경험했다. 해태 시절 거친 항의로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김응용 감독 대행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 중 시즌 도중에 기존의 감독이 퇴진을 한 뒤 감독대행을 맡았다가 시즌 후 감독으로 승격된 사례는 역대 14차례 있었다. 최초의 주인공은 강병철 감독. 1983년 7월에 물러난 롯데 초대 사령탑 박영길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대행을 수행한 뒤 그해 말 정식 감독에 올라 1984년 롯데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지휘했다. 마지막 사례는 2011년 SK 감독대행에서 정식 사령탑이 된 이만수 감독으로 남아 있다.
불운한 일도 있었다. 김준환 감독대행은 1999년 말 쌍방울에서 감독대행을 하다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지만, 그해말 쌍방울이 해체되는 바람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 SK가 창단을 통해 쌍방울 선수단을 사실상 인수했지만 SK는 초대 사령탑으로 강병철 감독을 선임했다. 김준환 감독대행은 결국 강 감독을 보좌해 SK 수석코치를 맡았다.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KIA는 감독대행 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된 확률이 높았다는 점이다. 타이거즈 역사상 해태 시절을 제외하고 KIA로 간판을 바꿔 단 뒤 2차례 감독대행 사례가 있었는데 모두 정식 감독이 됐다.
★기아 타이거즈(해태 시절 포함) 감독대행의 역사
①1982년 4월 28일 김동엽 초대 감독 13경기 만에 하차→ 조창수 감독대행→ 시즌 후 김응용 신임 감독 발탁(1982년 10월 18일)
②2004년 7월 26일 김성한 감독 하차→ 유남호 감독대행→ 시즌 후 유남호 정식감독 승격(2004년 10월 13일)
③2005년 7월 25일 유남호 감독 하차→ 서정환 감독대행→ 시즌 후 서정환 감독 정식감독 승격(2005년 10월 3일)
④김기태 감독 2019년 5월 16일 하차→ 박흥식 감독대행→ ?
◆변화하는 KIA 타이거즈
KIA는 박흥식 감독대행이 맡은 뒤 지난 주말 한화를 상대로 2승1패 위닝시리즈를 기록하며 일단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박 감독대행은 20일 스포츠타임과 인터뷰에서 "베테랑을 중용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베테랑들도 설렁설렁하는 모습 보이면 그 즉시 함평에 보내겠다. 올스타전까지 기간을 줬다. 그때까지 큰 변화가 없고 발전이 없다면 전폭적인 개편을 할 것이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는 베테랑들에게 명분을 주면서도 마지막 경고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리빌딩도 중요하지만 경기가 많이 남은 현 시점에선 팀이 싸우면서 이겨나가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리빌딩이라는 명목을 전면에 내세우면 자칫 '져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의도했던 리빌딩 대신 패배의식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최상의 멤버로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성적도 리빌딩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박 감독대행은 "절대로 포기란 것은 없다. 나 또한 이기려고 노력할 것이다. 팀이 정상적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퓨처스 감독을 지내면서 '정말로 잠재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이렇게 많구나, KIA의 미래는 상당히 밝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다. 내가 계산하고 있던 선수 중 일부 이미 1군에 올라와 있다. 현재 활약하고 있는 박찬호도 그 중 한 선수다. 또 류승현, 오선우, 박정우, 신범수 등도 앞으로 우리 KIA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KIA 박찬호
현재 KIA는 페넌트레이스에 예저된 경기일정에서 3분의 1을 소화했다. 강한 카리스마로 형님 리더십을 자랑하던 김기태 감독에서 원만한 삼촌 리더십을 갖춘 박흥식 감독대행이 흔들리는 KIA호를 수습해 팀 분위기를 잘 추스른다면 남은 3분의 2에서 KIA가 반등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가을잔치 가능성도 여전히 살아있다.
박흥식 감독대행은 덕아웃에서 응원단장처럼 '오버'를 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 애쓰고 있다. 코치와 베테랑 선수들이 하나되는 모습을 만들어낸다면 기적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박 감독대행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선수들이 팀을 위해 등 뒤에 있는 이름을 지우고 유니폼 가슴에 새겨진 타이거즈를 위해 뛰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닌 우리가 돼야한다. 그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지금 다시 새롭게 시작을 해야한다"면서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진다면 팀 발전은 없다. 팀을 사랑하고 동료를 사랑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덧붙였다.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게임, 실망했던 팬들이 다시 돌아와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야구. 박 감독대행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KIA 야구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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