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노수광, 자신의 운과 능력을 말하는 방식
[엑스포츠뉴스 조은혜 기자] 어렵사리 프로에 발을 들였고, 두 번이나 갑작스럽게 팀을 옮겼다. 최고의 성적을 낸다 싶자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팀의 우승을 지켜만 봐야 했다. 굽이굽이 어려운 길을 돌아오면서도, SK 와이번스 노수광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운명처럼 지나온 여러 번의 기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축구를 했던 노수광은 축구를 관두려다 아버지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하게 된다. 아버지를 따라간 곳에서 처음 글러브를 꼈고, 그 다음날 바로 야구부가 있는 곳으로 전학을 갔다. 계룡에서 대전까지, 50여 분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보통의 학생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해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힘들었지만 즐겁게, 그렇게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고 대전으로 이사를 오면서 생활은 조금 편해졌지만 생각하지 못한 위기가 찾아왔다. 중학교 2학년을 앞둔 동계 훈련 기간, 달리기를 하면 유난히 금방 지치고 숨도 제대로 골라지지 않았다. 체력이 달리는 것이 느껴지면서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
"그만둔다고 말할까 말까, 혼자서 2주일 정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때는 혼나는 것도 무서웠다. 고민 고민을 하다 부모님께 얘기를 했고, 어머니가 병원을 가보라고 해서 갔는데 태어날 때부터 안 좋았던 심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을 받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더라. 이후에 6개월에 한 번 씩 검사를 받곤 했는데, 고등학교 때까지는 체력이 많이 안 좋았다."
무사히 고등학교 3년을 지낸 후에는 진학의 갈림길에 섰다. 노수광은 "원래는 대학도 안 가려고 했다. 기숙사 생활도 싫었고, 운동도 힘들었다.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에 안 갔다면 다른 일을 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노수광의 아버지는 아들이 운동으로 성공하길 바랐다. 야구선수가 꿈이었지만 증조할아버지의 반대로 야구를 접어야했던 분이셨다. 반항 아닌 반항을 했던 노수광은 결국 아버지의 권유대로 건국대학교에 입학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노수광은 "대학에 가서는 친구들과 놀다가 야구는 하라면 하고, 그렇게 지냈다. 그런데 2학년 때 4학년 선배들이 프로 지명을 한 명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이렇게 졸업만 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 때부터 프로에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정신 차리고 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의욕과 결과는 비례하지 않았다. 대학 4학년 하계 리그부터 주춤하며 성적은 평범한 기록으로 수렴했고, 2013 신인 드래프트에서 "마지막으로라도 불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노수광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노수광은 "부모님이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셔서 난 '어쩔 수 없네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했다.
▲가장 끝에서 시작을 알리다
그래도 기회는 찾아왔다. 노수광은 신인 지명이 모두 끝난 그 날 저녁, 당시 윤병선 건국대 감독을 통해서 한화 신고선수(현 육성선수)로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프로' 노수광의 시작이었다. 그는 "아버지는 '네가 프로에 간 것만으로도 소원 다 이뤘다'면서 1군 선수 안 해도 되니 '즐기라'고 말씀해주셨다"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게 된 프로 유니폼, 지명을 받은 선수와 신고선수의 출발선은 분명 달랐다. 무엇보다 스스로 느끼는 실력 차가 컸다. 노수광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힘도, 스피드도 약했다. 고졸 신인들보다 타구도 멀리 나가지 않았다. 그 때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고 말했다.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뛰고, 스윙하고, 티배팅을 했다. 이때가 노수광 본인이 말한 '가장 미친 시절'이었다.
보이는 곳에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슬땀을 흘린 노수광은 2군 경기에서도 줄곧 대주자로만 나서다 당시 이정훈 한화 2군 감독의 눈에 들며 조금씩 기회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노수광에게 1군 무대를 밟을 기회가 찾아왔다. 노수광은 "추석 때였다. 그 시기에는 2군 시즌이 끝나서 친구 집에서 전 부치고,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짐 챙겨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들은 축하한다고 하는데, 얼떨떨했다"고 돌아봤다.
프로 입단도 막차를 탔던 노수광은 데뷔전 역시 시즌 막바지, 그리고 경기 막바지였다. 노수광은 2014년 9월 9일 목동 넥센전, 8-13이던 9회말 2아웃 상황 송신영을 상대로 데뷔 타석에 들어섰다. 노수광은 "초구가 볼이었고, 파울을 두 번 치면서 풀카운트까지 갔다. 신인이니 무조건 직구가 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살짝 몸 쪽으로 들어오는 슬라이더가 들어왔다"고 떠올리며 웃었다.
그 날의 경기는 노수광의 7구째 헛스윙 삼진으로 끝이 났고, 그는 사흘 만에 짐을 싸서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마지막의 마지막이었지만, 노수광의 야구 인생에서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 때 충분히 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노수광은 그 해 2군에서도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한화에서 KIA로, KIA에서 SK로
김성근 감독 부임 후 마무리 캠프에 합류한 노수광은 혹독한 훈련 스케줄을 하루도 쉬지 않고 모두 소화하며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 그리고 2015년 5월, 노수광은 한화와 KIA의 4대3 트레이드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노수광에게는 기회였다. 두 번째 팀에서의 데뷔 두 번째 1군 경기. 트레이드 당일이었던 이날 노수광의 데뷔 첫 안타와 타점, 득점이 나왔다. 2015년 10경기의 유일한 기록이기도 했다.
노수광은 "2015년에 기회를 받았지만 그 때는 잘 몰랐다. 1군 경험도 없었고, 그렇게 그냥 지나갔다. 2016년에는 스프링캠프를 갔다가 2군에서 시작했다. 4월 (나)지완이 형이 내려가면서 수원 KT전을 앞두고 첫 콜업이 됐는데, 정말 긴장했다. 데뷔전보다 더 떨렸던 것 같다. 타석에 들어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말했다.
당시 KIA가 2-1로 앞선 2사 3루 상황에서 시즌 첫 타석에 들어섰던 노수광은 김재윤 상대 좌중간 안타로 3루에 있던 김주찬을 불러들였고, 도루에 성공한 뒤 상대 실책을 틈타 홈까지 밟았다. 기분 좋게 2016시즌을 시작한 노수광은 김기태 감독의 믿음 아래 77경기 64안타 30타점 43득점 12도루 3할9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8월 도루 과정에서 손가락 골절상을 당했지만 빠르게 회복해 와일드카드 2차전 그림 같은 '슈퍼 캐치'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할 무렵, 2017년 노수광은 자신의 두 번째 트레이드를 통보받는다. 노수광은 "SK와 홈경기였다. 그날 경기에 나갔는데 느낌이 좋지 않아 실내연습장에서 타격 훈련을 하고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다. 나 말고 누가 트레이드 되냐고 물어보면서, '바뀔 순 없는 거냐'고 했다"고 웃었다. 그는 "짧은 시간이지만 친해진 사람도 많았고, 다시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야 한다는 게 신경이 많이 쓰였다. 잠이 안와서 밤을 새다시피 하고 인천으로 올라왔다"고 털어놨다.
갑작스러웠지만, 미련을 두지는 않으려고 했다. 노수광은 "김기태 감독님께서 '너한테 기회가 더 많이 올 거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감독님께서도 생각을 많이 해주셔서 보내주신 거라고 느낀다. 나도 스스로 기회라고 생각했다. 김기태 감독님께는 매번 경기할 때마다 인사드리고, 가끔 전화통화도 한다"고 말했다.
▲2018년, 함께 찾아온 행운과 불운
SK에 새 둥지를 튼 노수광은 빠르게 적응을 마쳤다. "처음에는 자율적이고 편한 분위기가 오히려 적응이 안됐다. '이런 분위기여도 되는구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웃은 노수광은 "형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이제 적응은 다 했다. 자기가 늘 하던 구장이 아니면 마운드가 가깝게 느껴지는데, 타석에 섰을 때 낯설었던 게 없어지고 이제 점점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노수광은 2017시즌 131경기 109안타 6홈런 39타점 72득점 16도루 2할8푼5리의 활약으로 SK의 리드오프 자리를 꿰찼다. 2018시즌에는 한 단계를 더 올라서 135경기 161안타 53타점 93득점 25도루 타율 3할1푼3리를 기록했다. 노수광은 지난해 자신의 호성적에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초반에 좋지 않아 '2할7푼만 하자'고 마음먹었는데, 연습했던 것이나 노림수 같은 게 신기하게 다 잘 맞아들었다. 운이 많이 좋았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정규시즌 종료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불운이 닥쳤다. 오른손가락 부상으로 노수광은 시즌을 완주하지 못했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편의점에 들르려고 올라가다가 다쳤다. 그날은 괜찮길래 고민했는데 다음 날 어쩔 수 없이 말씀드렸다. 우승보다도 나머지 8경기를 뛰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포스트시즌을 앞둔 상황에서 노수광의 공백은 SK에게 치명적이었다. 정경배 타격코치는 노수광에게 '내 눈 앞에 띄지 말라'며 농담 섞인 말로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본인이었지만, 그 시간을 지나온 노수광은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내가 없어서 잘 된 걸 수도 있다. 김강민 선배 타석에 내가 있었다면 과연 홈런을 기대했겠나. 가을야구를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 타석에 있었다면? 내 성향상 그렇게 큰 타구는 나오지 않을 거다."
▲노수광이 말하는 자신의 운, 자신의 노력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일본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서 재활 운동을 한 노수광은 이제 어느 정도 회복을 마치고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노수광은 "작년만큼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도 든다"면서 "수치만 본다면 작년 기록은 높은 목표다. 최대한 많은 경기에 나가고 싶다"고 기대했다.
지난해 채우지 못한 정규시즌 9경기, 밟지 못한 한국시리즈로 새 시즌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법도 하지만 노수광은 자신의 시선을 지난날에 두지 않았다. 그는 "물론 아쉬운 것도 있지만, 그걸로 끝이다. 더 아쉬워 해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앞으로 어떻게 준비할 지, 어떻게 해야 할 지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고선수로 시작한 노수광에게 항상 따라다닌 단어는 '근성'과 '노력'이었다. 지금의 노수광을 만든 그의 빼어난 능력이다. 이에 대해 노수광 본인은 "어렸을 때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은 컨디션 조절도 해가면서 경기 전후로 체크하는 정도인데, 나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다 하는 것"이라고 겸손하게 얘기했다.
노수광은 그라운드 안에서도, 밖에서도 운이 따랐다고 말한다. "안타는 '재수'라고 생각한다. 공을 맞추고 때려내는 건 내 능력이고 기술이지만, 안타가 되는 건 운이다. 마냥 노력만으로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운이 좋았고, 도와주신 분들도 많았다. 나를 봐주신 분들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난 확실히 운이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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