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스플 인터뷰] ‘은퇴’ 박정배 “미련 없이 던진 야구 인생, 후회는 없다”
모스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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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14:13
-‘현역 은퇴 선언’ 박정배, 17년 프로 생활 마무리
-“지난해 겨울 방출 예감, 호주에서 미련 없이 공 던졌다.”
-“아내와 어머니께 정말 감사, 제2의 야구 인생으로 보답하겠다.”
-“불펜 투수는 다리 교각과 같아, 평소 철저한 관리가 꼭 필요”
-“프로 생활에서 느낀 준비의 중요성, 이제 아이들에게 가르치겠다.”
“끝까지 미련 없이 던졌으니까요.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피콜로’ 투수 박정배가 현역에서 은퇴한다. 지난해 겨울 SK 와이번스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박정배는 호주로 건너가 질롱코리아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 연장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끝내 박정배에게 손을 내민 구단은 없었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인정하게 된 박정배는 유소년 지도자로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열고자 한다.
공주 출신인 박정배는 한양대학교 졸업 뒤 2005년 신인 2차 6라운드 전체 41순위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 2011년까지 두산에서 큰 빛을 보지 못한 박정배는 방출 뒤 2012년 SK로 팀을 옮겼다. SK 유니폼을 입은 박정배는 확연히 달라졌다. 박정배는 2012시즌(37경기 등판 4승 3패 3홀드 평균자책 3.14)과 2013시즌(38경기 등판 5승 2패 14홀드 평균자책 1.65) 동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후 3년여 동안 부침을 겪었지만, 박정배는 트레이 힐만 전 감독 부임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2017시즌 박정배는 61경기 등판 5승 3패 7세이브 16홀드 평균자책 3.57로 불펜진의 든든한 맏형 역할을 맡았다. 2018시즌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프로 통산 첫 번째 우승 반지를 낀 박정배는 2019시즌 20경기 1승 1패 1홀드 평균자책 10.07의 부진한 성적으로 1군 마지막 시즌을 마무리했다.
은퇴 결심을 전하는 박정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자신의 야구 인생을 ‘후회’라는 단어보단 ‘아쉬움’에 더 가깝게 표현한 박정배는 미련 없이 글러브를 내려놓는다며 미소 지었다. 엠스플뉴스가 박정배를 만나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프로 인생의 소회를 직접 들어봤다.
“지난해 겨울 방출 통보, 어느 정도 예상했다.”
은퇴 결정에도 표정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호주에서 마음껏 공을 던져보고 왔으니까요(웃음). 여기까지 했으면 그만해야겠단 마음이 호주에서 정리가 된 거죠. 그렇게 원 없이 공을 던지고 한국에 오니까 마음이 후련하더라고요. 다른 야구 인생을 시작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겨울 방출 통보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겁니까.
(고갤 끄덕이며) 방출 통보는 어느 정도 예상했어요. 반등하는 구위를 보여주지 못했고, 지난해엔 젊은 투수들도 1군에서 많아졌으니까요.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고 시작했죠. 돌이키면 많이 쫓긴 느낌입니다. 제가 해야 할 것만 하면 됐을 텐데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흔들렸어요. 방출 뒤에도 제 구위는 괜찮다고 느껴서 계속 도전한 거고요.
방출 뒤 SK의 프런트 업무 제안을 사양하고 호주 질롱코리아에서 공을 계속 던졌습니다.
방출 통보 뒤 다른 팀 단장님들께도 개인적으로 연락드리며 모든 문을 두들겼어요. 힘들겠단 반응이 많았죠. 호주로 가서라도 제가 여전히 공을 잘 던질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호주프로야구 무대에서 박정배 선수가 기록한 성적은 16경기 등판 2승 평균자책 3.91 19탈삼진 9볼넷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1.30이었습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는데요.
다소 기복이 있었지만,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 것 자체가 정말 행복했습니다. 거기서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현재 제 몸 상태를 인정하게 된 거죠. 공을 더 던져봤자 이 이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단 걸 느꼈어요. 마지막에 ‘오케이, 정배야 수고했다’라고 마음을 정리했죠.
다른 나라에서 처음 공을 던진 경험도 지도자 생활에서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다른 나라 타자들과 맞붙은 것도 중요하지만, 질롱코리아 동료들이 다들 후배라는 것도 신경이 쓰였어요. 후배들이 저를 집중해 보고 있으니까 공 하나를 허투루 던지지 않으려고 했죠. 이런저런 질문하는 후배들에게 제 노하우도 공유했고요. 다른 나라 야구에 적응하며 발전하려고 하는 후배들의 노력이 기특했습니다. 특히 롯데 자이언츠 소속 투수인 박종무 선수가 가장 눈에 들어왔어요. 라운드가 지날수록 구위가 좋아졌고, 항상 더 잘하려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려는 자세가 좋아 보였습니다.
현역 마지막 등판은 질롱코리아 유니폼을 입고 1월 26일 애들레이드전 0.2이닝 1피안타 1볼넷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 라운드에 투수들이 없어 제가 3연투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기는 상황에서 동점을 허용했기에 결과가 안 좋았죠. 현역 마지막 투구가 될 수 있으니까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정말 아쉬웠고 스스로 화가 났죠.
호주에서 공을 던진 나날들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듯싶습니다.
맞습니다. 제 야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이 됐어요. 질롱코링에서 함께한 임경완·김태완·임 훈 코치에게 정말 감사드린단 말을 전하고 싶어요. 후배들은 그 경험을 계기로 더 성장하길 응원하겠습니다. 호주에서 미련 없이 공을 던져봤기에 한국으로 돌아와 확실히 마음을 정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막상 은퇴를 결정했을 때 심경은 복잡했겠습니다.
누구나 은퇴를 앞둔 심경이 이랬을까 싶네요. 처음 느껴본 감정에 마음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마음이 공허하고요. 옛 동료들이 은퇴 소식을 알고 미국에서 다들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힘내라. 그동안 잘했고, 고생했다’라는 내용으로 그간 함께 뛴 모든 동료가 메시지를 보내줘 답장해주느라 바빴습니다. 다행히 다음 야구 인생으로 빨리 움직일 수 있게 주위에서 도와줘 헤매는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어요.
가족들도 무척 아쉬워했겠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때라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아니까요.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더 공을 못 던지는 것에 아쉬워하죠. 아내는 은퇴 기사가 나오니까 눈물도 흘렸다고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엄마 역할에 제 뒷바라지 역할까지 해준 아내에게 정말 고맙죠. 이제 아내에게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걱정 그만 끼치고 가정에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을 해야죠. 항상 사랑한단 표현도 자주 해야 하고요(웃음). 엄마의 위대함을 다시 느낍니다.
그렇다면 박정배 선수의 어머니에게도 메시지를 보내야겠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이 마운드 위에 서는 걸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저를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셨으니까 이젠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아직도 다 헤아리지 못할 듯싶어요. 제가 아이들을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저를 생각해주시니까요. 앞으로 더 열심히 사는 아들, 가장 역할을 잘 보여드리겠습니다.
SK로 이적, 박정배의 인생 방향을 바꿨다
다른 쪽으로 얘길 돌려보겠습니다. 박정배 선수의 프로 인생을 돌이키자면 데뷔 첫 등판이 기억나는지 궁금합니다.(박정배는 2005년 4월 2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데뷔해 1이닝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두산 소속 신인 시절 무려 리그 개막전에서 등판했어요. 개막전에 등판한단 상상 자체를 못 했기에 모든 순간이 황홀했습니다. 영화처럼 주위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포수 미트만 보였던 느낌이에요.
황홀했던 데뷔전 느낌이 쭉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두산 시절엔 별다른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무언가 항상 쫓겼던 느낌이었어요. 투구 전략을 미리 세우지 못하고 마운드 위에 올라가 무언가 보여줘야겠단 생각만 한 거죠. 막무가내로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면 항상 탈이 나더라고요. 그런 문제점을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무언가 항상 쫓겼던 느낌이었어요. 투구 전략을 미리 세우지 못하고 마운드 위에 올라가 무언가 보여줘야겠단 생각만 한 거죠. 막무가내로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면 항상 탈이 나더라고요. 그런 문제점을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2012년 SK 이적이 프로 인생의 전환점이 됩니다.
SK로 이적한 뒤 이만수 감독님과 성 준 코치님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응원이 정말 저에겐 큰 힘이 됐죠. 저도 놀라울 정도로 곧바로 1군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줬으니까요. 저도 선수에게 있는 마음의 벽을 깨는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2013년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다 이후 3년간 기복이 심했습니다.
좋을 때 감각을 잘 유지했어야 했는데 아쉬웠어요. 어깨 수술도 있었지만, 너무 무리하게 막 던지고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것도 있었죠. 아픈 뒤에 아프지 않게 운동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뒤엔 크게 아프진 않았죠.
꺼지는 듯했던 박정배의 불꽃은 2017년 다시 피워 올랐습니다.
그땐 심리적인 요소가 컸습니다. 트레이 힐만 감독님이 오신 덕분이죠. 오늘 못 던져도 내일 잘 던지면 된단 생각이 많았어요. 당일 결과에 일희일비 안 하려고 했죠. 마무리 역할로 시작한 2018년에도 솔직히 나 혼자 모든 걸 짊어진 듯 부담감이 컸어요. 그래도 힐만 감독님이 안 좋았을 때 항상 제가 1군에 있길 원하셨어요. 결국,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들어갔고요. 힐만 감독님에게 선수를 믿어준다는 걸 제대로 배웠습니다.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야구 인생에서도 큰 영향을 주신 거고요.
박정배가 꼽은 프로 인생에서 강렬했던 세 가지 장면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고 은퇴한 건 다행입니다.
막연한 생각만 있었는데 진짜 우승해보니까 ‘이런 기분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정말 황홀한 기분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힘을 더 보탰으면 좋았을 터라는 아쉬움이 분명히 있어요. 특히 지난해 막판 팀이 미끄러진 부분에서도 제가 베테랑 투수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정말 아쉽습니다. 지난해 경험을 토대로 올 시즌 SK가 더 성장할 거로 믿어요.
프로 인생을 돌이킬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궁금합니다.
(잠시 고민 뒤) 먼저 2012년 7월 13일 (정)상호랑 호흡을 맞춰 두산전 선발승(7이닝 3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한 게 떠오르네요. 다음은 수술 뒤 불안하고 막막했던 2015년 LG전(8월 2일) 구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울컥해 펑펑 울었던 기억도 나고요. 마지막으로 2018년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전(3월 24일)에서 마무리 등판해 깔끔하게 1이닝 삼자범퇴로 막았던 장면이네요. 할 수 있겠단 자신감을 크게 얻었죠. 이렇게 세 개가 우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야구 인생에서 ‘후회’는 안 느껴집니까.
후회는 제가 싫어하는 단어에요. 끝까지 미련 없이 던졌으니까 후회는 안 합니다. 항상 덜 후회하자는 방향으로 선택했고요. ‘무얼 하지 말걸’이라는 후회보단 결과에서 나온 아쉬움의 감정이 더 컸습니다. 준비를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 싶은데 제가 가르칠 아이들은 준비를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요. 15년 동안 유니폼을 입었으면 오래 입은 거잖아요. 보너스 경기를 못 한 거로 생각하겠습니다(웃음).
박정배 선수가 생각하는 ‘불펜 투수’는 무엇입니까.
다리가 안 끊어지게 해주는 중간 교각 역할을 하는 거죠. 그게 단단하지 않으면 다리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사실 예전에 제가 5연투까지 해봤어요. 이젠 불펜 투수들도 충분히 관리받을 수 있단 분위기가 생겨 다행입니다. 손 혁 코치님과 최상덕 코치님, 그리고 제춘모 코치님은 정말 몸 관리에 신경을 써주셨어요. 그런 부분에서 많이 배우고 느꼈습니다.
“힘들고 아픈 아이들을 도와주는 인생을 살겠다.”
이제 유소년 지도자와 재활 트레이너 쪽으로 새 야구 인생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공주중학교 오주상 감독님과 함께 야구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합니다. 또 ‘김지훈 스포츠메디컬센터’ 대표인 김지훈 원장님과도 함께 일을 하려고요. 오래전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분들인데 이렇게 야구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선수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함께 맡게 돼 기쁩니다. 앞으로 두 곳을 오가며 쉼 없이 공부하고 노력할 계획입니다.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이 아플 때 제가 도와주고 싶습니다.
이미 공주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일이 고민입니다. 제가 농담을 해도 차렷 자세만 하고 있어요(웃음). 어떻게 해야 부드럽게 대화를 풀어갈까 생각하고 있죠. 야구를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다 힘든데 그 과정에서 제가 도와주는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해부학 공부도 하려고요. 기술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부분 등 다양하게 접근하려고 해요.
제2의 야구 인생에서 더 큰 꿈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먼 미래엔 어린 선수들을 데리고 야구팀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예전에 힐만 감독님과 미팅을 하다가 이렇게 좋은 야구장에서 아이들과 재밌게 야구해보고 싶단 얘길 꺼냈거든요. 감독님도 훌륭한 꿈이라며 응원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아이들이 조금 더 재밌게 즐기며 야구하도록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한 자기 자신에게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웃음).
정배야. 정말 많이 고생했는데 앞으로 더 고생해야 한다. 그동안 혼자하고 싶은 걸 다 했으니까 앞으론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며 살자. 흐트러지지 말고 앞으로 생각한 대로 노력해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도록 하자. 정말 열심히 노력해라 정배야(웃음).
은퇴 소식을 들은 SK 팬들의 응원도 뭉클했을 듯싶습니다.
팬들께서 좋은 얘기만 ‘100만 개’를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쉽다고 해주시니까 그간 야구 인생을 헛되게 산 건 아닌 듯싶네요. 같은 하늘 아래 있으니까 다시 만날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저같이 부족한 선수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서 앞으로 더 열심히 잘살아야 할 듯싶습니다.
SK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도 궁금합니다.
인천에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항상 변함없이 응원해주신 SK 팬들이 있기에 제가 팀을 떠났지만, 마음속에 항상 인천과 SK가 있습니다. 이제 인천이 제2의 고향이기도 하고요. 길에서 저를 만나면 웃으며 하이파이브 해요(웃음). 꼭 약속하는 겁니다. 정말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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