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 사후 55년…최후의 말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일본 프로 레슬링의 전설로 남은 역도산(본명 김신락)은 1963년 12월 8일 밤 일본 도쿄 아카사카의 나이트클럽에서 야쿠자 단원과 시비 끝에 칼에 찔렸다.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역도산은 당시 임신 7개월이었던 아내 다나카 게이코(77)가 다니던 산부인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고, 수술은 잘 끝났으나 역도산은 복막염으로 15일 2차 수술 후 숨을 거뒀다.
다나카 여사에 따르면 역도산은 2차 수술 전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나이가 불혹도 안 된 39세였다.
일본 닛칸스포츠는 15일 역도산 사후 55년을 맞아 역도산의 제자 안토니오 이노키(75) 일본 참의원 의원, 역도산의 마지막 부인 다나카 여사를 인터뷰했다.
올해 허리를 수술한 이노키는 현재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과거 13시간 동안 허리, 목 수술을 받은 적도 있지만, 지금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노키는 "최근에는 내 형제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진심으로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많이 봤지만,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스승 역도산의 죽음이었다"고 했다.
스승은 죽어서도 꿈에 자주 나타났다고 한다. 가위가 눌리기도 했고, 무서워서 불을 켜고 자던 때도 있었다.
이노키는 1960년 4월 브라질에서 역도산에게 스카우트돼 당시 17세의 나이에 일본 프로 레슬링계에 입문했다.
역도산은 이노키를 제 아들처럼 귀여워했다. 유별나게 튀어나온 주걱턱이 특징인 이노키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아내 다나카에게 "턱을 불러와"라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르칠 때는 무자비했다. 역도산은 자신의 체육관에서 제자들을 일상적으로 구타했다고 한다.
이노키는 "이유 없이 맞을 때도 많았지만 훈련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원한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역도산은 1924년 함경남도 출신으로,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선수로 활약하다 1951년부터 프로레슬러로 전향했다.
역도산은 프로 레슬링 흥행을 위해 거구의 서양인 프로레슬러들을 초청해 대결했다.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서양인에 대한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던 일본인들은 역도산의 '가라테 촙'에 거구의 미국 백인 레슬러들이 나가떨어지는 장면에 대리만족을 느꼈다.
당시 막 꽃피기 시작한 TV 방송과 맞물려 역도산은 프로 레슬링 붐을 주도했고, 당대 일본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됐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김일까지 역도산의 수제자들 역시 프로 레슬링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역도산으로부터 사업 감각을 익힌 이노키는 1976년 일본 도쿄에서 '위대한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이종 대결을 벌여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이노키는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 출신으로 키 209㎝의 자이언트 바바에 비하면 왜소한 체격이었다.
이에 역도산은 이노키를 2년간 스모 체육관에 보내 체중을 불리도록 했다. 다른 제자들은 제쳐놓고 이노키를 자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어깨너머로 일을 배우도록 했다.
다나카 여사는 "남편은 자기 일을 모두 이노키에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역도산 특유의 영재 교육이었다고 닛칸스포츠는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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