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이종범·이상훈 빅딜 성사됐다면 역대급
[경향신문] ㆍKBO 화제 모았던 트레이드
이종범 | 이상훈KBO리그 역사에서 간판스타 트레이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8년 11월 롯데 최동원-삼성 김시진이 포함된 4 대 4 트레이드, 같은 해 12월 삼성 장효조-롯데 김용철이 포함된 2 대 2 트레이드, 1993년 해태 한대화-LG 김상훈의 트레이드, 1998년 12월 삼성 양준혁-해태 임창용 등의 트레이드가 큰 화제를 모았다.
‘트레이드설’이 구단 안팎에서 끊임없이 나오곤 하는데 만약 이뤄졌더라면 역대 최고로 남았을 트레이드 ‘불씨’도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자금난을 겪던 해태가 팀의 에이스였던 조계현과 이강철을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았다. 높은 연봉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해태는 LG와 접촉해 당시에 떠오르던 ‘영건’ 이상훈과의 트레이드를 시도했다. 구단 고위층 사이에서 잠시 오가던 트레이드 대화에서 LG는 “만약 이상훈을 데려가려면 이종범도 내놔야 한다”고 역제안을 넣었다.
리그 데뷔 2년차에 이미 최고 선수였던 둘이었다. 이종범은 1994시즌에 타율 0.393, 19홈런 84도루 196안타라는 만화에서 나올 법한 성적을 냈다. 이상훈은 같은 해 18승(8패, 평균자책 2.47)을 올리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앞장섰다.
사실상 이뤄질 수 없는 트레이드였고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를 기억하는 야구계 관계자는 “시작부터 모기업의 허락을 받기 어려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트레이드였다. 두 팀 모두 쉽지 않은 트레이드라는 것을 감안하고 더 센 카드를 꺼내든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다른 구단 단장은 “과거 간판선수급 트레이드를 보면 대부분은 구단과 갈등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드라마 상황도 마찬가지 아닌가”라며 웃었다. 1988년 롯데와 삼성 사이의 대형 트레이드는 그해 여름 최동원이 선수협의회 창설을 시도하려다 괘씸죄에 걸린 게 결정적이었다. 이후 굵직한 트레이드는 외환위기 이후 자금 사정이 어려운 팀들의 ‘트레이드 장사’ 때문이었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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