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3' LG-삼성 'FA 난투사'…가장 충격적 이적은 언제였나요?
"김동수 FA 보상금을 모두 삼성전 승리 메리트로 걸겠다."
LG 구단은 1999년 말 프리에이전트(FA) 포수 김동수가 삼성으로 이적하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FA 보상금 3억7500만 원(전년도 연봉의 300%)을 2000시즌 삼성전 승리 수당으로 전부 내놓겠는 뜻을 나타냈다. 삼성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났다. 이번엔 LG가 한 방을 날렸다. 14일 삼성 주장을 지낸 외야수 박해민을 4년 총액 60억 원(계약금 32억 원+연봉 6억 원+인센티브 4억 원)의 조건에 영입해 LG 유광점퍼를 입혔다. 특히 삼성 주장이 LG로 이적한다는 소식이기에 삼성 팬들이나 LG 팬들로서는 충격적인 뉴스로 다가왔다.
FA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9시즌이 종료된 후였다. 그동안 '재계 라이벌' 삼성과 LG 소속으로 뛰던 선수가 FA 자격을 얻은 뒤 상대 팀으로 넘어간 사례는 김동수부터 박해민까지 총 6차례 있었다. 공교롭게도 원소속팀 기준으로 LG에서 삼성으로 넘어간 선수는 3명이었고, 삼성에서 LG로 이적한 선수도 3명이었다.
핑퐁게임처럼 ‘치고받은’ 삼성과 LG 구단의 FA 난투사. 팬들에겐 6차례의 사례 중 어떤 FA 이적이 가장 충격적인 뉴스로 다가왔을까.
▲ LG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김동수(왼쪽)가 삼성 전수신 사장과 악수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1999년 말…김동수, LG→삼성
1999년 12월 3일, 야구계에 빅뉴스가 터졌다. LG에서 FA 자격을 얻은 포수 김동수가 삼성과 계약했다는 소식이었다. 3년간 총액 8억 원의 조건. 이에 앞서 11월 28일 해태에서 FA가 된 잠수함투수 이강철(현 kt 감독)이 3년 총액 8억 원에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FA 제도가 처음 시행된 뒤 1호 계약과 2호 계약이 연이어 터지자 모두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시로선 8억 원은 상상하기 힘든 계약 규모였다. FA 제도가 생기기 직전 프로야구 최고 연봉은 1998년 LG 김용수의 1억2000만 원, 1999년 현대 정명원의 1억5400만 원이었다. 3년 총액이긴 하지만 8억 원대 몸값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놀라운 금액이었다.
"이러다 프로야구 망한다", "거품이 끼었다"는 얘기는 그때부터 나왔고, 매년 되풀이됐다. 그러나 현재 FA 계약 총액이 100억 원도 넘어가는 시대지만 프로야구는 망하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김동수는 LG가 MBC를 인수해 프로야구에 뛰어든 1990년에 입단해 신인왕을 받았고, 1990년과 1994년 우승 주역으로 활약한 LG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충격을 받은 LG는 당시 "김동수 FA 보상금을 모두 삼성전에 메리트로 걸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흥분을 가라앉힌 LG는 실제로는 보상금 3억7500만 원을 삼성전에 올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팀 경기보다 삼성전 승리에 더 많은 메리트를 걸었던 건 사실이다.
▲ LG에서 친정팀 삼성으로 이적한 양준혁(오른쪽)이 삼성 신필렬 사장과 악수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2001년 말…양준혁, LG→삼성
2001년 12월 21일, 서울 삼성동 삼성 구단 사무실에서 양준혁의 입단식이 열렸다. 그해 FA 시장 유일한 미계약자였다. 4년간 기본 총액 23억2000만원(계약금 10억 원, 연봉 3억3000만 원)의 조건. 당시로선 역대 최고액이었다. 여기에 4년간 플러스·마이너스 옵션을 걸었다. 최대 27억2000만 원, 최소 17억2000만 원이 되는 계약이었다.
1993년 삼성에 입단한 양준혁은 1999년 해태로 트레이드됐다가 2000년과 2001년 LG에서 2년간 뛴 뒤 FA 선언을 했다. 그러나 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 창설 과정에서 구단들에 미운털이 박혀 자칫 FA 미아가 될 뻔했다. 당시 삼성 사령탑이었던 김응용 감독이 구단에 양준혁 영입을 강력히 요청하면서 3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 삼성에서 LG로 FA 이적한 정현욱 ⓒ곽혜미 기자◆ 2012년 말…정현욱, 삼성→LG
2012년 12월 17일, LG는 FA 투수 정현욱과 4년간 옵션 포함 최대 총액 28억6000만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LG 구단과 정현욱 측은 "연봉, 계약금, 옵션 등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밝히지 않기로 합의했다"며 함구했다.
정현욱은 1996년 삼성에서 데뷔한 뒤 12년간 핵심 불펜 요원으로 활약한 투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국가대표로도 궂은일을 도맡으면서 '국노(국민노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성실한 태도와 리더십으로 삼성 마운드의 구심점 노릇을 하던 선수였기에 삼성 팬들과 삼성 선수단에 전해진 충격파는 컸다.
그동안 LG에서 FA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이적한 사례는 2차례(김동수, 양준혁) 있었지만, 삼성에서 FA 자격을 얻어 LG로 넘어간 것은 정현욱이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 LG에서 삼성으로 넘어간 우규민(왼쪽)과 삼성에서 LG로 건너간 차우찬 ⓒ스포티비뉴스DB◆ 2016년 말…우규민, LG→삼성 / 차우찬, 삼성→LG
2016년 겨울엔 삼성과 LG가 서로 상대 팀 FA 투수를 빼오고 빼가는 '쌍방 영입전'의 진풍경이 펼쳐졌다.
먼저 불을 지른 쪽은 삼성이었다. 12월 5일, LG에서 FA 자격을 얻은 사이드암 투수 우규민을 4년 총 65억원(계약금 37억원·연봉 7억원)에 계약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당시 우규민의 삼성 이적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뉴스'였다.
삼성은 2015년 '해외 원정 도박' 파문으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친 데다 2016년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아픔을 겪었다. 게다가 11월 말에는 간판타자 최형우가 FA로서 4년 총액 100억 원의 조건에 KIA로 이적하자 충격에 휩싸였다.
여기에 내부 FA 투수 차우찬과 협상을 진행했지만 진척이 되지 않았다. 차우찬의 LG행 소문이 피어오르던 시기. 삼성으로선 우선 LG에서 FA로 풀린 우규민부터 잡아놓는 '선빵'을 날렸다.
그런데 머지않아 LG가 되치기에 나섰다. 우규민이 삼성 '푸른 유니폼'을 입은 지 열흘도 지나지 않은 12월 14일, LG는 차우찬에게 4년 총액 95억 원을 안기며 '줄무늬 유니폼'을 입혔다. 윤석민이 KIA와 4년(2015~2018년) 계약한 금액(총액 90억 원)을 넘어서는 당시로선 역대 FA 투수 최고액 기록이었다.
▲ LG 차명석 단장(왼쪽)과 삼성 홍준학 단장 ⓒ스포티비뉴스DB◆ FA 치고받기 ‘3대3’…타이브레이커는 누가?
삼성과 LG 두 구단 사이의 트레이드는 오랜 기간 '금기'처럼 여겨져왔다. LG 트윈스가 출범한 1990년부터 2011년까지 22년간 단 한 건의 트레이드도 성사되지 않았다.
2012년 마침 내 최초의 트레이드가 터졌다. LG가 포수 현재윤, 투수 김효남, 내야수 손주인을 받고, 삼성이 내야수 김태완과 정병곤, 투수 노진용을 얻는 3대3 트레이드를 한 것. 선수 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삼성 류중일 감독과 LG 김기태 감독이 불문율처럼 내려오던 두 구단 사이의 금기를 깨고 화해의 물꼬를 트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트레이드였다.
양 팀은 트레이드 협상 대신 FA 시장에서 서로 필요한 상대팀 간판 선수를 빼오는 ‘핑퐁 대전’을 벌여왔다. 그런데 1999년말 김동수부터 최근 박해민까지 FA 치고받기 스코어가 공교롭게도 3대3이다.
그렇다면 '타이 브레이커'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호사가들은 "삼성이 박해민을 빼앗겼으니 FA 김현수를 영입하면 재밌겠다"는 말을 퍼뜨리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FA 보상금과 몸값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일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김현수는 'FA B등급'으로 타 구단이 영입하면 '25인 외 보상선수 1명과 보상금 10억 원' 혹은 '보상금 20억 원'을 LG에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일을 누가 알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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