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 감독을 향한 인내심,한계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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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감독을 향한 인내심,한계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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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장기 사령탑' 신뢰에 보답 못 하며 다시 경질론의 칼날 위에 서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러시아월드컵이 끝나고 축구 국가대표팀(A대표팀) 신임 감독 선임을 이끈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은 포르투갈 출신 파울루 벤투 감독과의 4년 동행 프로젝트를 알렸다. 그는 "앞으로 4년간 우리가 인내한다면 좋은 결과를 낼 거라 본다"며 믿음을 보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한 대회가 끝나고 차기 대회까지의 4년 사이클을 1명의 감독으로 마무리한 사례는 없었다. 특히 지난 두 차례 월드컵은 예선 도중 감독을 교체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힘겹게 본선행에 성공한 바 있다.

축구 최강국인 독일의 경우 95년간 고작 11명의 감독만 선임했다. 제10대 사령탑인 요아힘 뢰프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 우승의 영광 후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극단적 실패를 겪었지만, 유로 2020까지 마친 뒤 바통을 한지 플릭 전 바이에른 뮌헨 감독에게 넘겼다. 독일 정도의 인내심까지는 아니지만, 선임 과정에서의 면밀한 검토와 일단 한번 지휘봉을 맡기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우리 대표팀 사령탑 운영 원칙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늘 존재했다.

6월1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조별리그 H조 최종전 대한민국과 레바논의 경기. 파울루 벤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연합뉴스

토트넘에서 펄펄 나는 손흥민, 벤투호에만 오면 '침묵'

벤투 감독은 지난 5월13일을 기점으로 한국 A대표팀 역대 최장기 사령탑에 이름을 올렸다. 종전 최장기 기록은 2014년 9월 선임돼 2017년 6월 경질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995일이었다. 2018년 8월22일 선임된 벤투는 2021년 9월 현재 취임 1100일을 가볍게 넘어섰다. 역대 A대표팀을 거쳐 간 73명의 지도자 중 가장 긴 시간 신임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신임이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로 해석되진 않는다. 1차 평가 무대였던 2019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 그쳤다. 취임 6개월 만의 대회이니만큼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관건은 한국을 상대로 두터운 수비벽을 쌓고 나오는 상대의 노골적인 '선수비 후역습' 전략에 대한 해법 찾기였다. 월드컵 2차 예선에서도 확실한 솔루션을 제시하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레바논을 상대로 원정에서 무득점 무승부로 비겼다. 홈에서도 레바논을 상대로 2대1 역전승으로 힘겹게 결과를 냈다.

지난 3월 한·일전에서의 0대3 참패는 벤투 감독에 대한 신뢰를 상당히 떨어트리고 만 결과였다. 상대가 물러서지 않고 점유율을 중심으로 한 전진 성향의 축구를 했음에도 해법을 찾지 못했다. 확실한 목적성을 갖고 플레이하며 상대를 압도하겠다는 그의 빌드업 전술이 전혀 먹히지 않자 지난 3년여의 믿음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9년 한·중·일이 자국 선수 중심으로 팀을 꾸려 나오는 동아시안컵(E-1 챔피언십) 우승이 벤투 감독 시대에 거둔 그나마 가장 눈에 띄는 성과다.

월드컵 10회 연속 출전을 위한 마지막 시험대인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 돌입했지만, 벤투호는 오히려 흔들리는 모습이다. 9월2일 열린 이라크와의 최종예선 1차전에서 0대0으로 비겼다. 15개의 슈팅을 날렸지만 이라크의 탄탄한 수비를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라크는 최종예선을 앞두고 사령탑을 교체한, 위기의 팀이었다. 2006 독일월드컵 당시 한국을 이끌었던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취임 6주 만에 이라크에 조직적인 축구를 이식하며 벤투호를 집요하게 흔들었다. 팀의 완성도가 물리적인 시간을 길게 투자하지 않아도 이뤄질 수 있음을 한국을 상대로 증명했다.

손흥민 활용법에는 아예 의문부호가 붙은 상태다. 이라크전에서 손흥민은 상대의 집중견제에 막혀 유효슈팅을 1개도 기록하지 못했다. 단기적 문제가 아닌 장기적 현상이다. 개인 통산 A매치 92경기에서 27득점을 올린 손흥민은 벤투 감독 부임 후 치른 22경기에서는 단 4골을 기록하는 데 그치고 있다. 경기당 득점이 0.32골에서 0.18골로 반 토막 났다. 그나마 4골 중에서 페널티킥 득점이 2골이다. 같은 시기 토트넘에서의 엄청난 득점 페이스와 비교된다. 2018년 8월 이후 손흥민은 토트넘에서는 144경기를 뛰며 62골(경기당 0.43골)을 뽑아냈다.

아시아 역대 최고 선수를 넘어 동일 포지션에서 현재 세계 톱5에 드는 월드클래스인 손흥민이 전성기에 대표팀에서 보여주는 부진한 득점력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대표팀과 소속팀의 경기 스타일의 차이, 지속적으로 발을 맞춘 조직력의 간극이 영향을 미칠 순 있지만 손흥민이 벤투호에만 오면 슈팅의 적극성마저 사라지고 패스 위주의 다른 성향의 선수가 되는 현상까지 설명하긴 어려워 보인다.

손흥민 개인의 분발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전술적인 도움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공간이 생기고 찬스를 포착하면 과감하게 슈팅을 날리는 손흥민이 그런 상황을 벤투호에서는 거의 맞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공격수를 보유했다면, 11명 중 1명인 '원 오브 뎀'보다는 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스페셜 원'의 전술이 가동되어야 하는데 벤투 감독 부임 후에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9월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열린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뉴스1

10월 이란·시리아전에서 반전 이루지 못하면 경질설 불거질 수도

강경한 원칙과 철학은 유연성 없는 고집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벤투 감독이 현재 처한 상황도 여기서 가장 크게 기인한다. 팀 단위 전술에 대한 고집 때문에 선수 개인의 특성이 죽는 경향이 많다. 상대 위험 지역에서 결국 개인 능력으로 해결해 줘야 하는 공격수들이 벤투호에만 오면 소속팀의 페이스를 잇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이미 지난 2019년부터 선수 선발 규모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뽑는 선수만 자꾸 뽑는 경향과 쓰는 선수만 자꾸 쓰는 성향이다. 상대 국가 언론에서 벤투호의 선발 라인업을 예상하면 거의 벗어나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상대가 분석하는 데 큰 변수가 없다. 이는 과거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시절에도 자국 언론과 팬들로부터 받은 비판의 요지였다.

이런 문제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유럽파를 비롯한 해외파들이 국내에서의 A매치를 위해 이동하는 것이 과거보다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손흥민, 황의조, 김민재, 황희찬 등은 이라크전을 이틀 앞둔 8월31일 귀국해 컨디션 관리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손흥민, 황의조, 김민재는 이라크전에 변함없이 선발 출전했고 풀타임을 뛰었다. 이미 손흥민은 소속팀인 토트넘에서 왼쪽 허벅지 뒷근육에 문제를 안고 온 상태였는데 긴 비행과 시차로 인한 피로가 회복되기 전에 다시 경기에 나섰다.

결국 손흥민은 오른쪽 종아리 염증으로 이라크전 닷새 뒤 열린 레바논전에 결장했다. 손흥민이 A대표팀에 소집돼 벤치에도 앉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황의조는 편도선이 부어 후반에야 출전했다. 남태희도 이라크전 후 허벅지 뒷근육과 서혜부 부상으로 소집에서 제외됐다. 레바논전에서 벤투 감독은 공격과 2선에 조규성, 황희찬, 나상호, 이동경을 새로 투입했지만 이것은 기존 멤버들의 부상으로 인한 강제적 플랜B에 가까웠다. 게다가 레바논전에 교체 출전해 결승골을 넣은 권창훈도 경기 후 6주짜리 부상이 발견됐다. 선수단 컨디션과 부상에 대한 체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투입한 후유증이었다.

벤투 감독은 이라크·레바논과의 경기 후 "2경기를 모두 무실점으로 마쳤다"며 긍정 요소에 강조점을 뒀다. 하지만 홈 2연전에서 승점 2점을 놓친 것과 저조한 득점력이 더 현실적인 과제다. 그나마 한국이 속한 A조가 2연승의 이란을 제외하고는 물고 물리는 상황이 이어진 게 다행이다. 현재 1승1무로 조 2위가 된 벤투호는 10월에 시리아(홈)와 이란(원정)을 상대한다. 테헤란 원정으로 치르는 이란전도 버겁지만, 최근 중동의 복병으로 떠오른 시리아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벤투 감독이 10월 2연전에서도 해법을 제시하며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앞선 두 차례 월드컵 예선처럼 신뢰와 경질 사이의 불안한 외줄타기가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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