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엘리니, 마흔 살 되는 유로 2024도 뛰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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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엘리니, 마흔 살 되는 유로 2024도 뛰겠더라

밤낮이 바뀐 날 보더니 아내는 “눈이 쑥 들어갔네~”라고 했다. 지난해 축구화를 벗고 새 인생을 사는 난 이번에 유로 2020(유럽축구선수권대회) 해설에 도전했다. 킥오프가 한국 시각으로 새벽 4시. 축구 인생 23년을 통틀어 하루에 서너 시간씩, 이렇게 열심히 축구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아빠의 모습을 처음 본 5남매도 놀아달라고 보채지 않았다.

12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결승전도 중계할 기회를 얻었다. 이탈리아가 잉글랜드를 꺾고 53년 만에 우승했다. 연장전까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3-2로 승리했다.

전반전은 잉글랜드 왼쪽 윙백 루크 쇼의 ‘쇼타임’이었다. 쇼는 킥오프 1분 57초 만에 왼발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터트렸다. 나도 발리슛은 자신 있지만, 쇼처럼 원바운드 된 공을 발등에 정확히 맞히기는 쉽지 않다.

선제골을 얻은 잉글랜드가 수비를 내렸다. 그러자 이탈리아의 볼 점유율이 60%가량으로 올라가더니 결국 후반 23분 동점 골을 뽑아냈다. 골대 맞고 나온 공을 문전에 있던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놓치지 않았다. 보누치는 광고판에 올라가는 세리머니를 했는데, 최용수 전 감독님이 1997년 광고판에 오르려다 넘어진 세리머니가 떠올랐다. 물론 화면에서 갑자기 사라진 ‘최용수 세리머니’가 훨씬 더 멋있다.

보누치가 승리 후 카메라를 향해 “It’s coming Rome(로마로 오고 있다)”이라고 외친 것도 멋졌다. ‘축구종가’ 잉글랜드 응원가 ‘Football is coming home(축구가 종주국으로 오고 있다)’에 빗댄 것이다. 이번에는 축구가 로마로 오고 있다고 보누치가 역설했다.
 

이탈리아 수비 듀오 키엘리니(오른쪽)와 보누치. [사진 보누치 인스타그램]


내가 꼽은 최우수선수(MVP)는 이탈리아의 조르조 키엘리니(37)다. 그는 유벤투스뿐 아니라 대표팀에서도 보누치와 함께 ‘센터백 듀오’를 이룬다. 도합 71세의 철벽은, 날카로운 잉글랜드의 공격수 해리 케인을 2선으로 밀어냈다. 키엘리니는 후방에서 동료의 위치까지 잡아주는 ‘그라운드 위의 감독’이었다.

관중석에 있었던 데이비드 베컴(46)은 늙지도 않더라. 얼굴만 보면 키엘리니가 베컴보다 형 같다. 그러나 그는 120분 내내 20대 선수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땀을 흘렸고, 노력한 것이다. 그래서 인정 받는 거다.

키엘리니가 스페인과 4강전 승부차기 때 보여준 엄청난 열정도 화제였다. 나이 먹었다고 후배에게 기회를 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키엘리니는 마흔 살이 되는 유로 2024까지 뛰어도 되지 않을까. 굳이 대체할 만한 선수를 찾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나도 41세에 은퇴했다.

승부차기를 막고도 덤덤했던 이탈리아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도 놀라웠다. ‘난 이 정도는 막을 수 있어’란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이제 22세인 그는 잔루이지 부폰(43)에 이어 이탈리아 골문을 10년 이상 책임질 것 같다. 그는 대회 최초로 골키퍼로서 MVP를 차지했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던 이탈리아를 맡아 3년 만에 탈바꿈시켰다. 세대 조화를 통해 빗장수비는 더 견고해졌고, 공격은 다채로워졌다. 이탈리아는 A매치 34경기 연속 무패(27승 7무)를 기록 중이다.
 

이탈리아 축구대표팀 주장 조르조 키엘리니(가운데)가 유로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이탈리아는 결승전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53년 만에 유로를 제패했다. [AP=연합뉴스]


반면 잉글랜드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승부차기 도박’은 실패로 끝났다. 그는 연장 후반 막판 공격수 마커스 래시포드와 제이든 산초를 교체 투입했다. 승부차기를 대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3·4번 키커로 나선 둘은 모두 실패했다.

아마 감독은 훈련 때 잘 찼던 선수를 투입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대부분의 선수는 중요한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차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 키커 스무살 부카요 사카가 실축 후 펑펑 우는 모습이 그래서 가슴 아팠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2007년 내가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에서 뛸 당시 감독이었다. 성향이 직선적이지도, 고집스럽지도 않다. 그는 내게 “가족은 잘 지내니? 아직 적응하는 단계니까 서둘지 말자”고 말해주곤 했다. 오늘도 선수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더라. 비록 우승컵은 못 가져 갔지만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전반만 놓고 보면 잉글랜드 좌우 윙백인 쇼와 키어런 트리피어의 움직임이 괜찮았다. 전반에 고전한 이탈리아는 부상으로 낙마한 윙백 레오나르도 스피나촐라가 그리웠을 거다.

유로 2020는 빠른 공수 전환과 좌우 윙백의 공격 가담의 중요성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대회였다. 윙 포워드가 안쪽으로 파고들면, 윙백들이 치고 올라간다. 반대쪽 측면은 처지면서 역습을 대비하는 형태다. 이런 전술을 펼치는 팀들이 대회 토너먼트에서 오래 살아남았다. 아마 세계 축구 트렌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심정지로 쓰러졌으나 단합해 4강에 오른 덴마크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축구는 참 아름답다.

난 9월부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을 중계한다. 더 열심히 준비해서 축구 선수로서 경험과 심정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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