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암 기적' 그도 몰락했다, 1인자조차 빠진 위험한 유혹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널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겨울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현장. ‘피겨 천재’로 각광 받던 카밀라 발리예바(16·러시아)는 연신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내 침울한 표정이던 그는 연기를 마친 뒤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최종 순위는 4위. 유력 금메달 후보가 입상에 실패했지만, 위로나 격려는 없었다. 수많은 카메라와 전 세계 스포츠팬들의 시선 속에서 발리예바는 철저히 혼자였다.
발리예바는 지난해 말 자국 대회서 금지 약물을 사용한 사실이 대회 기간 중 밝혀지며 추락했다. 그가 사용한 트리메타지딘은 협심증 치료제다. 관상동맥의 혈류량을 증가시켜 운동선수의 지구력 증진에 도움을 준다. 지난 2014년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금지 약물로 정해놓았다. 발리예바 도핑 샘플에서 검출된 트리메타지딘의 농도는 1㎖당 2.1ng으로, 이 약물을 사용하다 적발된 여타 선수의 200배에 달한다.
발리예바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연신 실수하는 장면은 금지약물이 운동선수의 몸 상태를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줄지언정, ‘선을 넘은’ 죄책감까지 받쳐주진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점프 후 착지 실수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발리예바. [뉴스1]
발리예바 뿐만이 아니다. 금지약물을 사용했다 적발돼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스포츠 스타는 수없이 많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 육상 100m를 세계신기록에 해당하는 9초79에 주파했다가 약물(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실격한 벤 존슨(캐나다)이 대표적이다.
고환암을 극복하고 세계적 권위의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를 7차례 우승해 인간승리 주인공으로 존경 받던 랜스 암스트롱(미국)은 에리트로포이에틴(혈액생성촉진호르몬)을 사용한 사실이 적발돼 충격을 줬다. 축구스타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와 미국 메이저리그 강타자 배리 본즈는 각각 에페드린(신경흥분제)과 PED(경기력향상물질)의 도움을 받았다. 지난 2016년엔 국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도핑 스캔들로 전 세계 스포츠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2년 전 2014년에 열린 소치올림픽에서 개최국 러시아가 자국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당국 개입 하에 도핑을 조장했다는 내용이다.
서울올림픽 당시 남자 육상 100m에서 스퍼트하는 벤 존슨(맨 오른쪽). 중앙포토
발리예바나 암스트롱처럼 해당 종목에서 세계적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왜 도핑의 유혹에 무너질까. 스포츠심리학자 김병준 인하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운동선수는 종목을 막론하고 ‘경쟁자를 이긴다’는 우월 성향(Ego Orientation)과 ‘나 자신을 넘는다’는 향상 성향(Task Orientation)을 공유한다. 두 성향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경쟁에서의 승리를 절대 가치로 두는 순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면서 “해당 종목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가진 선수라 해도 ‘지지 말자’, ‘빼앗기지 말자’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부정한 방법까지도 떠올릴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윤영길 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벤 존슨의 경우 스포츠의 불확실성(정해진 결론은 없다)이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잘못된 방법에 기댔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내부적 요인'에 무너진 케이스로 볼 수 있다”면서 “상대적으로 발리예바는 코치나 대표팀 관계자를 포함한 상위 그룹의 지시 등 '외부적 요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도핑 사실이 적발돼 나락으로 떨어진 사이클 레전드 랜스 암스트롱. 중앙포토
도핑의 역사는 인류 스포츠 발전사의 그림자나 마찬가지다. 각 종목별 경기력 향상을 위한 노력의 뒤안길에 ‘약물 요법’이 있었다. 기원전 고대 이집트인들이 달리기 선수의 기량 향상을 위해 노새 발굽을 갈아 만든 가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도핑(doping)’이라는 용어는 18세기 남아프리카공화국 카필족 전사들이 사냥에 나서기 전 흥분제 성분의 음료(dop)를 마신 것에서 유래했다. 이후 경마 출전을 앞둔 말에게 흥분제를 투여하는 것을 ‘도핑(doping)’이라 불렀고, 운동선수의 약물 요법에도 같은 명칭이 따라붙었다.
올림픽 초창기엔 도핑이 공공연히 사용됐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체력이 떨어진 장거리 육상, 사이클 선수에게 경기 중에 술을 주거나 근육자극제를 주사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스포츠 금지약물의 대명사인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은 고혈압 및 당뇨 치료제로 개발됐다. 개발진이 1939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혁신적 의약품이지만, 근육 강화를 통한 경기력 향상 효과가 확인되면서 한때 병원보다 경기장에서 자주 접하는 이름이 됐다.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종목이 다양화하면서 도핑 기술도 빠르게 발전했다. 근육 도핑(근력), 두뇌 도핑(집중력), 혈액 도핑(지구력과 회복력) 등 분야도 세분화됐다.
도핑에 규제가 생긴 건 해당 약물의 부작용이 선수의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부터다. 1960년대 사이클 선수들 사이에서 암페타민(신경흥분제)을 과도하게 쓰다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팔을 걷어붙였다. 1968년 그르노블 겨울올림픽과 멕시코시티 여름올림픽부터 일부 약물에 대해 사용 제한 규정을 만들었다. 1988 서울올림픽 당시 40여 종이던 금지약물은 20일 폐막한 베이징올림픽에선 500여 종까지 확대됐다.
스포츠에서 약물 관련 규제가 나날이 강화되는 추세지만, 적은 노력으로 더 큰 효과를 누리려는 검은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방해 도핑(금지약물 사용 사실을 은폐하는 약물을 함께 투여)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최근엔 줄기세포 기술을 활용해 운동 능력을 대폭 향상시킨 DNA를 몸 안에 주입하는, 이른바 ‘DNA 도핑’도 등장했다. 발리예바의 몰락이 도핑 시장의 위축이 아닌, 방해 도핑 시장의 성장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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