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중국의 축구굴기, 홀로 빛난 손준호
프로축구 K리그 MVP 출신 미드필더 손준호(30)가 중국 수퍼리그(프로 1부리그)를 평정했다. 소속팀 산둥 루넝 타이산의 더블(정규리그와 FA컵 동반 우승)을 이끌며 중국 무대에 ‘축구 한류 시즌2’를 예고했다.
손준호는 9일 중국 청두 피닉스 마운틴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2021 중국축구협회(FA)컵 결승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소속팀 산둥이 상하이 하이강에 1-0으로 승리하며 FA컵을 품에 안는 과정을 함께 했다. 경기 후 손준호는 중국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전반에 가벼운 허벅지 부상을 당했다. 후반에 통증을 참고 뛰었는데, 결국 우승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손준호는 김민재(페네르바체), 김신욱(라이언시티) 등이 떠난 수퍼리그에 마지막으로 남은 국가대표급 한국인 선수다. 2020년 전북 유니폼을 입고 더블(2관왕)을 이끌며 리그 MVP로 선정됐는데, 지난해 중국으로 무대를 옮기자마자 새 소속팀에 또 한 번 2관왕의 영예를 안기며 유력한 MVP 후보로 떠올랐다.
중국 시나스포츠는 “손준호는 전천후 미드필더”면서 “산둥에 수퍼리그와 FA컵 두 개의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올 시즌 수퍼리그 MVP로 손색이 없다”고 칭찬했다. 손준호가 올 시즌 수퍼리그 MVP에 오르면 한국과 중국에서 2년 연속으로 소속팀의 2관왕을 이끌고 리그 MVP에 오르는 진기록을 쓰게 된다.
중국 축구의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다. 2010년대 세계축구를 뜨겁게 달군 중국의 ‘축구굴기(축구를 통해 일어선다)’ 캠페인이 불과 10년 만에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모양새다. 중국 축구계가 최우선 과제로 삼은 '2020 카타르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한 게 직격탄이 됐다.
「 용어사전 > 축구굴기
중국이 자국 축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담아 만든 신조어. 축구광으로 알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뜻을 따라 2015년경 본격적으로 시작한 중국 축구 부흥 프로젝트를 지칭한다. '굴기'라는 표현은 후진타오 전 주석 시절 외교노선이었던 '화평굴기(평화적 방식을 통해 외교 역량을 일으킨다)'에서 따왔다. 2016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발표한 '2016~2050 중국 축구 중장기 발전 계획'에 따르면, 2020년까지 축구선수 5000만 명 육성, 2030년까지 중국 전역에 14만 개의 축구장 건설, 2050년까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에 올라 세계축구를 지배한다는 야심찬 비전을 담고 있다.
」
경제 위기도 한 몫했다. 헝다그룹이 운영한 광저우FC를 비롯해 중국의 부동산 및 건설회사가 소유한 축구팀들이 자국 부동산 경기 침체와 함께 줄줄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헝다그룹 파산 여부는 "글로벌 경제 위기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줄을 이을 정도로 우려스런 변수였다.
중국 축구의 돈줄이 메마르자 천문학적인 연봉을 주고 데려온 유럽과 남미 출신 지도자와 선수들은 올 시즌 대부분 중국을 떠났다. 2관왕에 오르며 중국 최강자로 자리매김한 산둥조차도 지난 시즌엔 선수단 임금이 체불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박탈당했을 정도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1년에 10억 위안(1900억원) 이상을 쓰는 축구클럽이 10여 개팀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팀이 6개 안팎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팀들은 중국축구협회의 긴급 재정 지원을 받아 힘겹게 시즌 일정을 마무리했다.
중국 프로축구 시장 붕괴를 이끈 헝다그룹의 부채 상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손준호의 맹활약은 그래서 더욱 도드라졌다. 선수 몸값의 거품이 급격히 빠지면서 이른바 ‘가성비(가격대비 성능)’가 뛰어난 ‘메이드 인 코리아’ 선수와 지도자가 다시금 중국 축구계에서 주목 받는 분위기다. 선수 중에서는 손준호가 대표적이고, 지도자로는 충칭 당다이의 1부리그 잔류를 이끈 장외룡 감독과 1부 승격을 눈앞에 둔 서정원 청두 룽청 감독 등이 주가를 높이고 있다.
‘중국통 에이전트’로 불리는 김진원 아로파스포츠 대표는 “중국 축구 시장이 급격히 축소된 건 맞지만, 건전하고 합리적인 운영을 통해 경쟁력 있는 축구팀을 만들어보려는 기업은 여전히 많다”면서 “중국 축구가 일정 기간 자정 작용을 거친 이후엔 투자 대비 고효율을 보여주는 한국 지도자와 선수들에 대한 수요가 다시 늘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축구굴기를 한창 추진하던 2015년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맨 왼쪽)이 영국을 방문해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오른쪽),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맨체스터 시티 트위터 캡처]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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