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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의 '소년가장', 아직도 '30살' 파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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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메시의 대항마로 불렸던 브라질 기대주 알렉산드레 파투
▲ 잦은 부상 그리고 무절제한 사생활로 스스로 커리어 망쳐
▲ 1989년생인 파투의 현재 소속팀은 상파울루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조용히 사라진 선수들. 혹은 큰 기대를 받고도 이를 채우지 못한 채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춘 선수들까지. 그래서 준비했다.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소식은 접하기 힘든 선수들. 축구계 슈가맨들을 재조명하겠다



[골닷컴] 박문수 기자 = 브라질의 기대주. 잠시 메시의 대항마로도 거론됐던 선수. 시원시원한 돌파와 어린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을 무기로 밀란과 브라질의 소년 가장으로 불렸던 선수.

1989년생인 파투는 밀란 데뷔전부터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치며 축구 팬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던 선수다. 그러나 잦은 부상 그리고 불성실한 태도와 복잡한 사생활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끝내 날개를 펼치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파투는 불운의 선수로 불리고 있다.

이번 축구계 슈가맨을 찾아서 7번째 선수는 바로 파투다. 미운 오리에서 백조를 꿈꿨지만, 결국 미운 오리에 그쳤던 파투는 어떤 선수였을까?

# 파투는 누구?
1989년생이다. 브라질 피라나주에 위치한 파투 브랑쿠 출신이다. 본명은 알렉산드리 호드리게스 다 시우바다. 예명이 파투다. 별명은 오리다. 파투 예명인 'PATO'는 포어로 오리를 뜻한다.

오리라는 애칭 때문에, 한때는 백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그냥 미운 오리에서 멈췄다. 실력 외적인 부분에서 구설수에 오르며 끝내 날개를 펴지 못했다. 2013년 1월 AC 밀란과 결별한 이후에는 여러 클럽을 전전하는 저니맨이 됐다.


# 선정 이유
데뷔 당시만 하더라도, 메시의 대항마로 불릴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파투는 브라질 유망주 중에서도 가장 큰 기대를 받은 선수였다. 2006년 인테르나시오날 소속으로 출전한 클럽 월드컵에서 이름을 알렸고, 내로라하는 클럽의 구애 속에서 밀란 유니폼을 입었다. 일찌감치 밀란의 소년 가장으로 불릴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다만 기대와 달리 성장세가 멈췄다. 참고로 파투의 나이는 아직도 30살이다.

# 전성기는 언제?
데뷔 시즌 활약상이 제일 좋았다. 반시즌 동안 18경기에 나와 9골을 가동했다. 당시 파투 나이는 18세였다. 어린 나이지만 세리에A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기대치 역시 한껏 높아졌다.

특히 나폴리와의 데뷔전에서는 호나우두, 카카와 함께 일명 '카파로 트리오'를 결성하며 브라질 삼각편대를 결성했다. 그 경기 파투의 데뷔골은 파투 커리어 최고의 득점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후에도 파투는 제노아전에서 멀티 골을 가동하며 팀에 2-0 승리를 안겼고, 우디네세전에서도 결승포를 가동했다. 그러나 밀란 자체가 28라운두부터 급격한 내림세를 겪었다. 11경기에서 5번이나 패했고 순위 역시 5위로 시즌을 마쳤다.

여기에 리보르노전에서 호나우두가 슬개건 파열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카파로 라인도 자취를 감췄다. 질라르디노와 인자기가 있었지만, 전자는 밀란에서 기대치에 못 미쳤고 후자는 노장이었다. 어린 파투의 어깨만 무거워졌다.

그다음 시즌에는 36경기에 나와 15골을 터뜨렸다. 19세라는 어린 나이를 고려하면 좋은 성적표다. 그다음 시즌에는 12골 그리고 다음 시즌은 14골이었다.

2011/2012시즌부터는 기량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상이 문제였다. 스타일도 바뀌었다. 빠른 발을 무기로 상대 수비진을 공략하기보다는 오히려 득점에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사생활 논란도 걸림돌이었다. 2010년 4월에는 결혼 1년 만에 이혼했다. 부상에 사생활 문제까지 겹치면서 기량이 떨어졌다. 심지어 전 밀란 구단주이자 이탈리아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둘째 딸인 바르바라 베를루스코니와 연인 관계이기도 했다. 물론 진작에 헤어졌지만.

# 주요 성과는?
우승 횟수 자체가 적다. 파투가 합류한 시기 밀란은 서서히 암흑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파투가 떠난 이후부터는 쭉 암흑기다.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 시절 2007년 유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기대주로 꼽혔던 인테르나시오날에서는 2006 클럽 월드컵에 나와, 대어 바르셀로나를 잡고 우승을 달성했다. 밀란에서는 2010/2011시즌 세리에A 정상을 차지했다. 2009년 1월에는 세리에A 이달의 선수상을 그리고 2009년에는 최고의 기대주에게 주는 골든 보이 어워드의 주인공이 됐다.

밀란 기준으로 총 150경기에 나와 63골을 넣었다. 세리에A에서는 117경기에서 51골을 가동했다. 참고로 23세까지 기록이다. 참고로 파투는 밀란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파투는 골을 많이 넣은 선수에게 주는 'Goleador'일원 중 하나다. Goleador에는 지안니 리베라와 로베르토 바죠 그리고 인자기 등 쟁쟁한 선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있으며, 1989년생인 파투는 최연소로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커리어 최고의 골은 앞서 말한 나폴리전 그리고 바르셀로나전이 있다. 2011/2012시즌 바르셀로나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에서는 경기 시작 24초 만에 시원시원한 돌파로 득점에 성공하며 부활 가능성을 알렸다. 거기서 끝났지만.

# 최근 근황은?
현 소속팀은 상파울루다. 파투의 최근 근황을 알기 위해서는 밀란을 떠난 이후 그의 행보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우선 파투는 2013년 1월 이적시장을 통해 코린치안스로 둥지를 옮겼다. 대신 밀란이 데려온 선수가 바로 발로텔리다.

코린치안스에서 파투는 최악이었다. 부상은 물론이고, 불성실한 태도가 문제였다. 기대는 컸지만 이를 충족하지 못했다. 코린치안스에서 상파울루로 임대된 이후에는 자신의 원소속팀에 대해 이유 없는 조롱으로 뭇매를 맞았다. 코린치안스 복귀 이후에도 유럽행을 이유로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줬다. 현재는 브라질 대표팀 사령탑인 치치가 파투에게 다시금 구애의 손길을 뻗었지만, 외면했다.


2016년 1월 이적시장을 통해 첼시에 합류했지만, 밀란 시절과는 너무 달랐다. 그다음 시즌 비야레알로 이적하며 부활을 노렸지만, 반시즌 만에 중국 텐진 유니폼을 입었다. 중국 무대에서는 그럭저럭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2018년 구단과의 재계약 합의 실패로 자유계약 신분이 됐다.


2019년부터는 상파울루 유니폼을 입고 있다. 전 시즌 파투의 활약은 21경기 5골이다. 여전히 상파울루 소속이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리그 멈추면서 올 시즌 출전 기록은 없다.


# 축구계 슈가맨을 찾아서 다음 주자는 누구?
라드니츠키 피로트라는 클럽에서 프로 데뷔했다. 1979년이며, 2012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이적으로 커리어가 꼬였다. 뚜렷한 성과가 없던 탓에 여러 클럽을 전전한 저니맨 신세가 됐다. 같이 이적한 선수는 그럴저럭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 선수는 그렇지 못했다. 스페인과 터키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활약한 적이 있다. 현재는 에이전트로 활약하고 있다. 대표팀에서는 49경기에 나와 17골을 가동했다.

참고로 이 선수 2005년 11월 당시 대표팀 일정 소화를 위해 국내에 방문했지만, 알아보는 이가 없어서 굴욕적인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일명 '용산 굴욕'.

그래픽 = 박성재 디자이너
사진 = 게티 이미지 , AC 밀란 공식 홈페이지 / 스쿼카 트위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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