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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에서 극찬받는 한국계 코치.."그의 존재는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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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호중 인터넷기자] 지난 4월 11일(이하 한국시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에네스 칸터는 24득점 30리바운드를 기록,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상대로 승리에 앞장섰다.

칸터는 승리 후 공식 인터뷰에서 “임 코치”의 이름부터 가장 먼저 꺼냈다.

“임 코치와 오늘 아침 대화를 나눴는데, 최소한 20득점-20리바운드를 기록하라고 말씀하셨다. 임 코치님은 나한테 많은 조언을 주신다. 오늘은 유서프 너키치가 못 뛰니 최선을 다해서 리바운드를 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경기 도중에는 임 코치가 리바운드 27개가 구단 최고 기록이라고 하셨다. 당장 나가서 28번째 리바운드를 잡으라고 말씀하셨다” (웃음)

임 코치, 그는 누구일까.

포틀랜드의 스타 포인트가드, 데미안 릴라드는 아예 별명까지 지어줬다.

“‘조니 온 더 스팟’, 필요한 게 있으면 늘 대기하고 있다. 내가 필요한 경기 영상을 다 갖고 계신다. 동시에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이다. 그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평했다.

테리 스토츠 포틀랜드 감독은 임 코치에 대한 질문을 받자 무려 1분 30초간 말을 이었다.

“임 코치가 스태프에 있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특권이다. 그가 거둔 성공의 비결? 태도다. 안 하려고 하는 것이 없다. 팀을 먼저 생각한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먼저 들고 나온다. 코치 미팅에도 활발하게 참여한다. 포틀랜드 스태프에서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통의 스태프와 확실히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남자가 한국계라는 것. 이름 ‘임 씨’에서 알 수 있듯, 그에게서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미국으로 최초로 이민온 한국인 중 하나였으며, 그의 모친(Yim Inja: 임인자) 역시 서울 출생이다.

현재 포틀랜드 구단의 비디오 코디네이터 및 선수 발전 코치로 일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어바인 출생의 4세대 재미교포로 NBA 감독을 꿈꾸고 있는 남자이기도 하다. 포틀랜드 ‘조나단 임’ 코치에 대해 알아보자.
▲그의 가족 배경, 구체적으로 어떤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임 코치는 가족 역사에 대해 다음처럼 설명했다.

“내 증조 할아버지는 미국에 최초로 온 한국인 세대이다. 오클랜드에 최초의 한국계 교회를 여셨다. 할아버지는 오클랜드에서 태어났고, 거기에서 할머니를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다. 할아버지는 전쟁에 참여하셨고, 혼자 남겨진 할머니는 시카고로 이사하셨다. 거기에서 내 아버지가 태어난 것이다”

뉴욕 타임즈에 의하면, 임 코치의 증조 할아버지는 1905년 한국에서 하와이로 넘어와 파인애플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농구는 아버지를 통해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시카고 불스의 광팬이었고, 시카고가 승리하면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당시 시카고는 많이 이겼고,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마이클 조던의 팬으로 자랐다.”

“어머니는 서울 출신이다. 소개팅을 통해 만나셨다. (웃음) 아버지가 잠시 일 때문에 서울에 갔을 때 빠르게 사랑에 빠지셨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 로맨틱한 것 같다. 서로를 만나는 시간이 뭐가 중요할까”

▲이 남자가 지도자가 된 과정

지도자 생활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14살때 유소년 클럽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체질과 잘 맞았다. 한 단계씩 밟아갔고, 고등학교 지도자까지 올라섰다. 여자 농구, 남자 농구 가리지 않고 지도했다. 그렇게 약 10년동안 고등학교에서 지도자로 있었다” 임 코치의 말이다.

NBA 팀에 들어가게 된 과정도 다이나믹했다.

“운이 좋았다. 밥 테이트라는 코치가 있다. 제이슨 키드의 슈팅 코치로 뉴저지 네츠에 있던 사람이다. 그 양반이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본인의 슈팅 프로그램을 팔러 다니더라. (웃음) 당시 나와 함께 있던 고등학교 코치가 그의 프로그램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지만 나는 밥 코치가 얘기한 내용이 인상깊었다. 쓰레기통에 가서 프로그램집 하나를 집어들었다. 어차피 여름캠프에 슈팅 캠프를 열 예정이었다. 참고자료로 유용할 것 같았다.”

임 코치는 말을 이어갔다. “당시 내 선수들은 슈팅에 대해서 더 배우고 싶어했다. 수업 1회당 200달러를 내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나 말고 다른 코치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문득 쓰레기통을 뒤져서 슈팅 프로그램의 주인을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학생에게 ‘NBA 코치 한 명을 안다’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웃음)”

“밥 코치는 수업 1회당 35달러에 해주겠다고했다. 나는 NBA 코치인데 더 받아야한다고 했다” (웃음) 그렇게 밥 코치와 연결이 되었다. 나는 매번 밥 코치가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을 지켜봤고, 훈련이 끝난 후 긴 수다를 떨며 친해졌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친해졌다.

“하루는 밥 코치한테 문자가 왔다. 당시 레이커스 감독이었단 루크 월튼한테 면접보러 간다며 나랑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더라. 나 역시 재미있을 것 같아서, 좋다고 얘기했다.


쓰레기통을 계기로 맺어진 인연은 임 코치에게 크나큰 자산으로 돌아왔다.

“밥 코치는 레이커스가 아닌 클리퍼스 슈팅코치로 채용이 되었다. 근데 밥 코치가 당시 GM에게 ‘입사할테니 내 친구 존도 들여달라,그없이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없다’라고 했다. 내가 블레이크 그리핀, 디안드레 조던 등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처음 발을 내디딘 NBA는 어렵기만 했다.

"당시 비니 델네그로가 감독이었다. 클리퍼스 구단에서 처음 시킨 것은 ‘바닥에 묻은 땀을 닦는 것’이었다. 나는 ‘문제없지’를 외쳤고, 열심히 땀을 닦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9월 11일이 되었다. 코치 한 명이 와서 ‘굉장히 인상깊은 청년이네. 비디오룸 인턴십을 제안하고 싶다’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NBA 구단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클러피스 인턴십에서 돈을 전혀 받지 못했다. 집에서 왔다갔다하는 것도 멀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100번이면 100번 할 것 같다. 경력을 쌓으며 나도 성장했다.”

“그 덕에 포틀랜드에 정식 직원으로 합류했다. 당시 포틀랜드가 비디오 코디네이터가 없던 상황에서, 어찌어찌 내가 추천되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한 수요일, 집 화장실에 있었다. 밀워키 국번의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사실 은행에서 전화가 온 줄 알고 안 받으려고 했다. (웃음) 알고보니 테리 스토츠 포틀랜드 감독이었다. 감독님과 약 1시간 가량 대화를 했다. 내 배경 등을 얘기했다”

스토츠 감독의 반응은 어땠을까.

“스토츠 감독이 이력서를 보내라고 하시더라. 이력서 이상의 것들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감독한테 ‘나 뽑아주시면 후회 절대 안 하실거다. 엉덩이가 닳도록 일하겠다’라고 보냈다. 잠자리에 들 때 ‘할 것 다했으니 후회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츠 감독에게 답장이 왔다. 생전 처음보는 임씨의 이름을 꺼내면서 나랑 관련이 있는 사람이냐고 하시더라. (웃음) 뜬금없었지만, 그래도 꽤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물었다는 것은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니. 그리고 그날 오후 채용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조나단 임은 포틀랜드 구단의 비디오 코디네이터, 그리고 선수 발전 코치로서 포틀랜드 벤치에 당당히 합류하게 되었다. 영상 분석이 그의 특기이다. 그의 자리는 벤치 2번째 줄이다. 포틀랜드 작전 타임에 선수들에게 아이패드를 이용해 영상을 보여주고 있는 코치가 있다면, 임 코치라고 보면 된다.

NBA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임 코치는 비디오 코디네이터 및 선수 발전 코치를 맡고 있다. 경기 전후 스카우팅 비디오를 준비하며 트레일 블레이저스의 모든 경기 영상을 편집한다”고 그의 업무를 소개했다.


▲콤플렉스 덩어리에서 명코치가 되기까지

지금은 엘리트 코치로 자리잡은 그지만, 초반에는 험난하기만했다.

“자신감이 초반 문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클리퍼스 인턴십 면접을 볼 때 3명의 코치와 함께 봤다. 내가 3번째였는데, 앞에 두 명의 이력이 화려하더라. UCLA에서 지도자였고, 일본 대표팀 지도자였고...나는 그냥 고등학교 코치였다고하니, 클리퍼스 관계자가 ‘팀을 당연히 우승 시켰겠지?’라고 묻더라. 지난 시즌 3승 거뒀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면접관은 바로 일본 출신 코치와 스시에 대해 얘기하러 가더라”

흥미로운 것은 클리퍼스 인턴 자리를 따낸 것은 임 코치였다는 것.

 

그는 어려움에 대해서 더 얘기했다.

“아시아인의 편견을 극복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였다. 포틀랜드 비디오 코디네이터가 된 후, 타팀 GM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 적 있다. 근데 이후 친구를 통해 들었는데, 당시 그 GM은 내가 소프트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 무시했다더라. 충격받았다. 아시아 문화에서 어른이 얘기할 때 말을 끊지 않는 것은 기본이어서 그의 얘기를 잠자코 들었는데, 그것을 보고 오해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려움을 이겨낸 현재는 명코치 중에서도 명코치가 되었다. 

지난 1월 4일, 포틀랜드 CJ 맥컬럼은 ‘디 애슬래틱’과의 인터뷰에서 본인 성공의 비결로 3가지를 꼽았다.

“아내의 내조, 형의 지원, 그리고 ‘임 코치와의 훈련’”

“임 코치와 시즌 전 브런치를 하면서 목표에 대해 얘기했다. 내 경기를 쭉 분석한 뒤, 목표를 정했고, 어떻게 달성할지 구체적인 방법도 얘기했다. 그리고 열심히 훈련했다. 그게 결과로 나오고 있다”

선수단 내 신뢰는 매우 두텁다.

몇몇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2019년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세미파이널 포틀랜드와 덴버간의 2차전 경기. 포틀랜드 구단 코칭스태프는 모두 모두 나비넥타이를 하고와서 화제가 되었다. NBA 감독들은 기본적인 넥타이를 하거나, 넥타이를 하지 않는다.

이들이 나비넥타이를 한 것은 임 코치 때문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임 코치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고, 코칭스태프는 그의 쾌유를 기원하기 위해 임 코치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나비넥타이를 단체로 매치하고 온 것이다.


이날 스토츠 감독의 행보는 실로 흥미로웠다.

 

시즌이 달려있는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경기 중반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조나단 임 코치를 위해 나비넥타이를 하고 나왔다. 쾌유를 빈다”며 접전 상황에서도 애제자를 떠올린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임 코치의 상징이어서 나비 넥타이를 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나비 넥타이를 했는데, 아직까지 진 적 없다. ‘나비 넥타이 수요일’ 승리는 이어졌다. 임 코치 덕에 나비 넥타이를 하고 승리했다.”라고 얘기했다. 

 

당황스러울 정도의 임 코치 사랑이었다.

경기 전이나 중이나 후나. 애제자 무한 걱정 뿐이었다.

▲몸소 실행하는 선한 영향력


그는 한국을 알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사소한 것도 있다. 포틀랜드 선수단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것도 그의 일. 스토츠 감독은 임 코치 덕에 불고기를 알게 되었다. “배추를 좋아하지 않아서 김치는 별로 안 먹는데...임 코치가 브랜드 ‘캐틀’에서 한국 바베큐(불고기)맛 과자를 만든다고 처음 알려줬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미국 내 만연하고 있는 아시아 인종차별을 근절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 최근 미 현지 애틀랜타에서는 아시아인 6명이 총살당하는 끔찍한 범죄가 일어났다. 단순 우발적 범죄가 아닌, 아시아 혐오의 결과물이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리그 내 유명한 코치가 된 그는 방송 인터뷰에도 간간히 참여한다. 리그 내에서 유명한 코치들은 흔히 감독을 대신해 3쿼터 시작 전, 전반 총평을 남기는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하고는 한다. 

지난 3월 21일에 이뤄진 인터뷰는 너무 특별했다. 평소처럼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갑자기 “끝내기 전 잠시만, 할 말이 있어”라며 강한 어조로 얘기했다.

“내가 이런 기회를 사용하지 않으면 태만한 것이야.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이유없는 혐오감정으로 인해 범죄를 당하고 있어. 이제 내 목소리를 써야만 해. 아시아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혐오와 불의에 맞서 싸워야한다고 생각해. 단지 아시아인만 아니라 모든 인종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얘기지. 우리모두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보자. 다양성, 공정성, 포함성, 이것들만 지켜낸다면 우리 모두는 어느 때보다 강해질 것이야”

NBA 중계방송은 적게는 10만 명에서 많게는 100만 단위의 시청자가 나온다. 임 코치의 용기있는 발언은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었다.

 

포틀랜드 구단은 SNS를 통해 그의 영상을 공유하며 임 코치에게 전폭적인 힘을 실어줬다.

팀의 스타 포인트가드 데미안 릴라드는 그의 말을 들은 뒤, ‘아시아인 혐오를 근절하자’ 티셔츠를 입고 훈련에 참여하며 화제가 되기도했다.

말 그대로 선한 영향력이다.

▲다음 목표 “NBA 감독”

이 남자는 더 큰 꿈을 꿀 자격이 있다.

“나는 큰 꿈을 세우는 편이다. NBA에서 감독이 되고싶다고 하면, 다른 이들은 어려울 것이라 무시한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수많은 장벽을 극복해왔다. 자신감은 준비 과정에서 온다. 지속적인 노력에 시간이 더해져야만 가능하다. 나는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현재 NBA에 있는 동양계 감독은 마이애미 히트의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이 유일하다. 공교롭게도 그 역시 비디오 코디네이터 출신 감독이다.

 

만일 또 다른 구단에서 동양계 감독이 나온다면 이 남자가 유력하다. 포틀랜드의 명코치, 재미교포 4세대 조나단 임의 행보에 주목해보자.

#인터뷰 참조_김지 패밀리 프로젝트, 오레곤라이브, 뉴욕타임즈, 포틀랜드 트리뷴

#사진_포틀랜드 구단 유튜브, SNS(@trailblazers, @yim), NBA 공식 홈페이지(프로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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