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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트레이드 10주년… 박병호가 걸어온 길, 앞으로 가야할 길

2011년 7월 31일은 누군가에는 평범한 날이었을 수도 있지만, 히어로즈 야구단과 KBO리그는 그렇지 않았다. 과장 없이 역사를 바꿔버린 날이었다. 트레이드 마감일에 터진 LG와 넥센(현 키움)의 2대2 트레이드는 KBO리그의 지형도를 바꿔버렸다.


마감시한을 3시간 여 앞두고 극적으로 성사된 당시 트레이드에서 넥센은 베테랑 우완 불펜 송신영과 우완 기대주 김성현을 LG에 주고 우타 거포 자원인 박병호와 베테랑 우완 심수창을 받는 조건에 합의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송신영을 받아 불펜을 보강한 LG가 이득을 봤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대로 박병호는 물음표만 붙은 선수였다. 대형 거포 유망주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LG에서는 좀처럼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증의 선수는 그렇게 잠실을 떠났다.


이 트레이드가 없었다면, 어쩌면 대한민국의 4번 타자로 성장한 박병호는 없었을 수도 있다. 박병호는 이적 후 팀의 4번 타자로 자리 잡으며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많은 홈런을 때렸다. 홈런왕에 오른 것도 모자라 2014년과 2015년에는 50홈런 이상을 기록했고, 2015년이 끝난 뒤에는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메이저리그(MLB) 무대에 진출하기도 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가 된 현재도 키움의 간판타자로 활약 중이다. 통산 홈런만 317개인데, 이적 후에만 293개의 대포를 터뜨렸다.


그 트레이드로부터 딱 10년이 지났다. 트레이드 10주년을 맞이하는 박병호는 담담했다. 7월 31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퓨처스팀(2군)과 경기를 앞두고 묵묵하게 타격 훈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공식 경기이기는 하지만, 약간은 연습 경기 분위기도 나는 경기장. 하지만 얼굴에 별다른 미소는 없었다. 대기 타석에서 상대 투수의 투구를 보는 박병호의 얼굴에서는 나름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박병호는 최근 2년간 부상 및 부진이 겹치며 명성에 금이 갔다. 지난해에는 93경기에서 타율 0.223, 21홈런에 그쳤다. 박병호이기에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의견이 많았으나 올해도 잦은 부상으로 고전 중이다. 장기 결장의 위기는 넘어갔지만, 온몸이 돌아가며 아픈 통에 좀처럼 타격에 전념하지 못했다. 전반기 60경기 출전에 그쳤고, 타율은 0.228로 지난해보다 나아진 게 별로 없다. 10개의 홈런도 박병호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초라하다.


다행히 전반기 막판 재활군에서 차분하게 몸을 점검했다. 2군으로 내려가게 된 원인이 된 골반 통증도 거의 다 회복했다. 설종진 고양(키움 2군) 감독은 7월 30일과 31일 박병호가 5이닝 정도를 소화하며 컨디션을 점검할 것이라 예고했는데, 박병호는 이틀 동안 이 미션을 완수했다. 몸에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였다. 이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일이 남았다.


30일 경기에서는 안타를 치지 못했지만, 31일 경기에서는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좌전안타를 쳤다. SSG 퓨처스팀이 수비수를 3·유간에 조밀하게 배치하는 시프트를 썼지만 박병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비수들이 손을 댈 수 없을 만큼의 빠른 타구로 3·유간을 뚫어버렸다. 총알 타구속도에서 힘은 분명히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메이저리그 생활을 끝내고 2018년 KBO리그로 돌아온 박병호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올 시즌이 끝난 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취득할 예정이다. 그러나 FA 이전에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은 선수도 잘 알고 있다. 마운드에서 위기에 빠져 있는 키움은 결국 타선이 그 부담을 나눠 가져야 한다. 그 중심에 박병호가 다시 설 수 있을까.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은 시기에 가장 큰 난관에 부딪힌 박병호. 트레이드 10주년이 각오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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