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배구를 하는 그녀들, 수원시청 배구단
2005년 프로배구 출범 이후, 배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V-리그로 옮겨갔다. 프로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커질수록, 아마추어 배구 선수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마추어 배구는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여자 실업팀에는 다양한 선수들이 모여 배구 하나만을 바라보며 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수원시청 여자배구단은 지난 해 성적과 세대교체를 동시에 이뤄낸 팀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원시는 스포츠 거점 도시다. 배구는 물론, 야구와 축구 등 주요 스포츠 프로 구단이 연고지로 자리잡았다. 수원시는 실업이라 불리는 아마추어 종목에도 상당한 수준의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아마추어로는 여자 배구를 비롯한 14개 단일 종목과 2개 혼성 종목 팀을 운영하고 있다. 16개 종목 총 150여 명 선수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최대 규모다.
수원시청 배구단은 프로 원년과 같은 2005년에 창단해 현재까지 강팀의 자리를 지켜왔다. 2018년에는 전국체전 우승과 한국실업배구연맹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신장의 열세를 끈끈한 조직력과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하면서 얻어낸 성적이었다. 화려했던 그 영광을 뒤로 하고, 더 높은 곳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수원시청 배구단 훈련 현장을 찾았다.
코트 위 뿜어져나오는 활기…배구는 행복이다
지난 1월 8일 아침 일찍 방문한 수원 전산여고 체육관에서는 많은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곧이어 시작된 볼 운동, 손석범 코치의 서브를 두 명 혹은 세 명의 선수가 번갈아 받는 리시브 훈련이 이어졌다. 리베로는 물론 측면 공격수와 미들 블로커까지, 세터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리시브 훈련에 참여했다. 특히 수원시청의 주전 리베로를 맡고 있는 김주하를 비롯한 베테랑 선수들이 어린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건넸다.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의 태도는 상당히 진지했다. 또한 훈련 내내 서로에 대한 격려와 활발한 파이팅이 오가는 훈훈한 분위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추운 겨울 날씨 속 배구에 대한 열정이 피워낸 싱그러운 훈련장 분위기였다.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수원시청 강만식 감독
“실업 리그 역시 실력으로 평가받는 곳…간절함과 열정을 가진 선수가 팀을 만든다.”
지난 해 수원시청이 전국체전 우승, 실업연맹전 준우승 등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대로 자주 만났던 포항시체육회에는 이름값 있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지정희, 김민지, 이윤희 같은 선수들은 프로에서도 활약했던 선수들이죠. 그럼에도 우리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이 아닌 팀으로 경기를 치렀기 때문일 겁니다.
지난 해 팀 성적은 물론 전국체전 지도자상까지 받으셨는데요.
지도자들에게 촉이 오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데, 작년에 그걸 느꼈던 것 같아요. 소위 ‘그림 하나 나오겠다’라고 말하잖아요. 선수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면서 재미있는 일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선수 구성을 대폭 바꿨습니다.
본래 실업 리그가 선수 이동이 잦은 편이긴 합니다. 일단 기존 멤버 중에서 시은미는 양산시청으로 이적했고, 곽유화는 개인 사정으로 팀을 떠났어요. 이 외의 다른 선수들도 이적 또는 다른 길을 찾아 나선 상황이고요. 그렇다보니 고르게 선수들을 보강했습니다. 베테랑 세터 여달샘을 비롯해, 리베로 김혜선과 윙 스파이커 이예림 등을 영입했어요. 전반적으로 선수단 구성을 내실있게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수원시청 감독으로서 선수단 구성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일단 우리 팀의 큰 색깔은 신구 조화와 세대 교체가 자연스럽다는 겁니다. 프로에서 뛰던 선수들은 물론, 프로에 지명받지 못한 선수들이나 애초에 실업으로 유입되는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편입니다. 사실 실업 팀들이 매년 드래프트만큼은 아니더라도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프로 지명과는 또 다른 취업 통로인 셈이죠.
아마추어 배구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팬들도 실업 배구에 대해 많이 궁금해합니다.
중계가 많지 않은데다 경기가 열리는 곳이 대부분 지방이라 접하기 어렵긴 합니다. 그래도 프로 경력이 있는 선수들도 있고 최근 여자배구 인기가 좋아서인지, 꾸준히 경기장을 찾아주는 팬들도 있고 다른 아마추어 부문에 비해서는 인기가 높은 것 같습니다.
실업 리그에 대한 편견도 존재하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긴 하죠. 대회 일정이 프로와 다르다 보니 상대적으로 좀 쉽게 보이는 것도 있고요. 프로에서 뛰던 선수들이 실업 리그로 오고 싶어 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실력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은 프로와 실업이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업 리그는 배구에 대한 절실함과 간절함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곳이에요. 프로에서 뛰다가 실업으로 온 선수들 중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프로 경력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처음 들어오면 같은 환경에서 같은 문제에 직면합니다. 그런 것을 돌파할 수 있느냐는 선수의 의지에 달려 있는 거죠.
사진 : 김주하(왼쪽)와 김혜선(오른쪽)
믿고 보는 리베로 조합, 김주하&김혜선
김주하 선수는 지난 해에 이어 수원시청에서 뛰고 있고, 김혜선 선수는 합류한지 얼마 안 됐는데, 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김주하 전반적인 연령대가 낮아서 그런지, 좋지 않은 상황도 다시 좋게 반전시키는 힘이 좋은 것 같아요.
김혜선 분위기가 상당히 밝아요. 기존에 있던 선수들이 빨리 마음을 열어줘서 적응하기도 쉬웠습니다.
수원시청에 어린 선수들이 많은데, 혹시 언니로서 해주는 조언이 있나요.
김주하 아무래도 흔들리는 순간에 많은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안 되는 걸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자신감 있게 확실히 하자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언니들이 있으니까 믿고 하라고 하죠. 운동 선수들은 잘 하던 것이 안 될 때, 밸런스가 많이 무너지거든요. 그러지 않도록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것 같아요.
김혜선 비슷한 이야기인데, 서로 돕자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첫번째가 안 되면 두번째에서 커버해주고, 두번째가 좋지 않아도 공격에서 해결해주면 서로 좀 더 편해지니까요.
두 선수 모두 프로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프로와 실업이 다른 점이 있나요.
김주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어차피 운동하는 건 똑같거든요. 물론 외국인 선수가 없어서 국내 선수들끼리 맞춰가야 한다는 점은 다르죠.
아, 대회 일정도 달라요. 프로는 6개월 풀리그를 치르지만, 실업은 5~6개 대회가 1년 내내 이루어지죠. 실업에서 보낸 첫 해에는 그게 좋았어요.
프로에 있을 땐 쉬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절대적으로 쉬는 시간이 많은 건 아니에요. 프로는 시즌이 끝나면 한 달을 통째로 쉬는 거고, 실업은 그걸 나눠 쉬는 정도거든요. 대회가 맞물리면 그나마도 쉬기 쉽지 않아요.
프로에 있을 때보다 미디어 노출이 적잖아요.
김혜선 프로는 사실 부담감과 압박감이 상당해요. 모두에게 세세한 평가를 받아야 하니까요. 팀 내 경쟁도 견뎌야 하는데, 매체가 더 많은 부담을 주기도 하죠.
김주하 프로는 환경 자체가 개방적이잖아요. 카메라도 많고 관중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실업은 단촐해요. 관중도 선수들의 가족이 대부분이에요.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렵기도 했는데, 지금은 배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배구를 하는 자체가 즐겁고 행복합니다.
김주하 선수는 윙스파이커로 뛰기도했는데, 지금은 리베로입니다. 공격 욕심은 없나요.
김주하 몸이 좋았던 어린 시절에는 공격도 열심히 했어요. 지금은 연습 때 재미 삼아 하는 정도에요. 아무래도 몸이 안 따라주더라고요. 작년 도민체전을 앞두고 연습 중에 윙 공격을 몇 번 시도했다가 다시 무릎 부상을 겪기도 했어요. 그때 공격에 대한 마음을 한 켠에 접어뒀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공격수로 경기 출장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리베로로서, 서로에 대한 평가를 해볼까요?
김주하 혜선 언니는 학교 선배에요. 언니는 발이 정말 빨라요. 판단력도 좋은 편이라서 볼도 잘 쫓아가고, 순간 대처 능력도 좋죠. 선천적인 것 같아서 부러워요. 아무리 노력해도 쫓아갈 수 없는 게 있잖아요.
김혜선 주하는 볼을 다루는 감각이 진짜 좋아요. 기본기가 정말 좋아서 이단 연결도 정확한 편이죠. 그것도 타고 나는 거잖아요. 부러워요.
김주하 선수는 12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김주하 생각도 말도 모두 달라진 것 같아요. 혼자가 아닌 둘이 되니까 책임감도 커졌고, 내 잘못 때문에 함께 사는 사람이 욕을 먹는 것이 싫더라고요. 행실이 조신해진 것 같아요.
프로 생활 이후 오랜만에 팬들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한 마디 해주세요.
김주하 여전히 저는 배구를 하고 있고, 잘 지내고 있어요. 가끔씩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제 이름을 언급해주시는 걸 보면서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팬들이 돌아와달라고 말씀해주시면, 아주 잠깐 프로 복귀를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실업팀에서 하고 싶은 배구를 마음껏 하고 있으니까, 실업 팀 경기 많이 보러와주세요.
김혜선 프로에 있을 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매 순간 감사했습니다. 지금 여자배구 인기가 높아졌는데, 실업 선수들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많이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진 : 이윤정(왼쪽)과 최지유(오른쪽)
열정과 패기의 조합, 이윤정&최지유
두 선수 모두 프로 경험 없이 실업 리그에서 뛰고 있잖아요. 동기들 중에서 프로 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들도 있을 텐데,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나요.
이윤정 연락도 많이 하고, 만나기도 많이 만나요. 서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다는 아픈 곳 걱정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수원시청 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최지유 팀 구성이 완료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다들 잘 어울리고 있고 분위기가 진짜 좋아요.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낮아서 그런지 화이팅이 좋습니다.
최근 여자배구의 화두 중 하나가 세터입니다. 윤정 선수의 이름도 언급이 되는데요.
이윤정 주변에서 해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부담된다기 보다는 지금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요. 그래서 이번에 달샘 언니가 온다고 했을 때,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어요. 상대할 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같은 포지션이니 경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만약 프로팀에서 영입 제안이 온다면 어떨 것 같아요.
이윤정 상상해본 적은 있긴 한데, 실제로 기회가 온다면 무척 고민할 것 같아요. 학생 때는 프로를 목표로 운동을 했으니까요. 프로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 때문에 드래프트는 나가지 않았고, 경기를 뛸 수 있는 실업 무대를 선택했거든요. 지금은 조금 다를 것 같기도 합니다.
최지유 아직 생각해본 적 없어요. 지금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게 우선인 것 같아요.
2019년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최지유 저는 실업 생활하면서 1차 대회 우승을 못해봤어요. 올해는 꼭 1차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습니다.
이윤정 저는 1차뿐만 아니라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습니다. 전관왕 꼭 하고 싶어요.
두 선수 모두 인터뷰가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할까요.
이윤정 수원시청 이윤정입니다. 실업 리그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실업 경기장에도 많이 찾아와주셔서 함께 즐겨주세요.
최지유 실업 리그 경기가 대부분 지방에서 열려 관람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주말 경기도 있으니까 경기 보러 오시는 김에 주변 구경도 하시면 좋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업 리그를 지배해온 베테랑, 세터 여달샘
올 해 이적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난 체전 이후 제 스타일에 맞는 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적을 하게 됐습니다. 전 소속 팀 포항시체육회는 선수들 신장이 모두 좋다보니 높은 배구를 했거든요. 수원시청은 조금 더 빠른 배구를 하고 있으니 저와 잘 맞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감독님께서 달샘 선수를 실업 리그의 이효희 선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만큼 실업에서는 베테랑인데, 실업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버티는 것이 제일 중요하죠. 오래 뛰었다고 잘 하는 게 아니니까요. 물고 늘어지면서 배워가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차분하게 준비하면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프로 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어떨까요.
사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키가 작아서 프로에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무대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실업 무대는 저에게 참 감사한 곳입니다.
세터라는 포지션이 참 어렵습니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요.
상대 높이가 높으면 블로킹을 속여줘야 하고, 높이가 낮으면 정확하게 올려줘야 하죠. 어떤 상황에서든 세터로서 어려웠던 것 같아요. 게다가 선수 생활 중 겪은 어깨 부상이 정말 힘들었어요. 제 스타일을 다시 찾기까지 1~2년 정도는 고생했던 것 같아요.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잖아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할까요.
프로팀과 실업팀은 많이 다르긴 합니다. 하지만 훈련 내용과 훈련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똑같아요. 경기가 프로만큼 박진감 넘치지는 않더라도, 실업 배구 특유의 끈질긴 경기 또한 나름의 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보러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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